상장기업 사외이사 160명 대상 설문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자동 편입 규정
사외이사 경영인 출신 15% 불과
경제단체가 사외이사의 전문성·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상 사외이사의 개인회사를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자동 편입하는 규정이 사외이사 선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7일 발표한 '사외이사 활동 현황 및 제도 개선과제'에선 지금까지 국내 상장사의 경우 사외이사가 교수·전직 관료 등 특정직군에 집중돼 미국 등에 비해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됐다. 이는 한국에만 있는 공정거래법상 '계열편입' 규제가 한몫했다고 상의는 해석했다. 조사는 상장기업 사외이사 16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9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됐다.
공정거래법상 계열편입 규제란 사외이사의 개인회사는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원칙적으로 자동 편입되고, 예외적으로 독립경영을 신청·승인된 경우에만 제외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기업 현장에서는 공정거래법 규제 때문에 사외이사 선임을 거절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상의는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 사외이사 직군은 학계 36%, 공공부문 14%로 교수·전직 관료가 절반에 달했고, 경영인 출신은 15%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미국 S&P 500과 일본 닛케이 225 기업은 경영인이 각각 72%, 52%로 절반을 상회했고, 학계는 각각 8%, 12%에 그쳤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말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 선임 후 지배회사에 한해 원칙적으로 계열회사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상의가 규제개선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을 진행한 결과 2022년 사외이사 계열편입 일부 규제완화가 사외이사직 수락 결정에 '크게 도움됐다'는 응답이 27.7%, '다소 도움됐다'는 응답이 70.2%였다. 또 사외이사 97.9%는 규제완화가 도움됐다고 답변했고, 도움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다만 여전히 남아있는 '선임 후 지배회사 원칙적 계열편입 규제'와 관련해, 사외이사 33.1%는 재직기간 중 개인회사 창업 계획이 있는데 이 중 37.7%는 창업회사가 자동 계열편입되는 만큼 사외이사직을 사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32.1%는 창업 후 조만간 회사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상의는 "외국에는 공정거래법상 계열편입 규제가 없어 다른 기업을 운영하거나 별도 창업계획이 있는 경영인 출신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경영·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전문성 부족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 대표기업의 사외이사 직군을 비교해 보면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애플 사외이사 7명은 모두 전·현직 CEO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된 반면, 우리나라 A사 사외이사 6명은 교수 3명, 전직 관료 2명, 금융·회계 분야 1명으로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경영·산업 전문가는 부족했다.
사외이사들의 의견이 기업 내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선 사외이사들의 대부분이 의견 반영 과정을 거친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사외이사 84.4%는 회사에서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전 의견수렴·토론 등 사전 의견반영 과정을 거친다고 응답했고, 55.6%는 이사회 안건에 찬성한 경우에도 안건에 대한 우려사항이나 부작용 등을 고려하여 `조건부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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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외이사의 전문성보다 독립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미래산업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인 만큼 사외이사의 역할을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전략적 의사결정 파트너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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