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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 길을 잃다]②"유치원생이 '진짜 놀아도 되나요'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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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유치원 교사들의 증언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아이들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

'7세 고시' 바람은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기자가 돌아본 인천에서도 송도·루원시티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영유아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고, 부평·계양 등 구도심의 아이들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다. 인천 지역 유치원에 재직 중인 이수진씨(28년차·루원시티), 김선희씨(25년 차·송도), 이혜정씨(6년 차·계양구), 박은정씨(25년 차·부평구) 등 교사 4명을 만나 현장 얘기를 들었다.


루원시티에서 만 5세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수진 교사는 "영어 유치원 다니던 아이들이 공립 유치원에 와서 제일 먼저 묻는 말은 '저 진짜 놀아도 돼요'라는 말"이라며 "아이들이 공부에 치여 노는 법을 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씨는 "유치원은 오후 4시면 끝나는데, 바로 집에 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며 "세 살 사내아이가 태권도를 시작하고 네 살이 되면 영어, 다섯 살엔 학습지가 추가된다"고 했다.


[한국의 교육, 길을 잃다]②"유치원생이 '진짜 놀아도 되나요' 물어요" 2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 영어유치원을 마친 어린이들이 하원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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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구의 이혜정 교사는 "유치원 설명회에 온 학부모들은 영어 프로그램이 있는지부터 살펴본다"며 "사립 유치원들은 영어 유치원이 아닌데도 오전부터 영어 수업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2022년 교육과정 총론에 따르면,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교과에 편성돼 있다. 유치원에서 특별활동 개념으로 오후에 영어 프로그램을 짤 수는 있지만, 정규 교육 시간인 오전에는 수업할 수 없다.


'영어 유치원'들은 이 지침을 따르고 있지 않기에 '유치원'이 아닌 '학원'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사립 유치원들이 정부 지침을 어기고 오전 영어 시간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부모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 수업 안 하면 유치원에 안 온다는 것이다. 오전 영어를 가르치는 사립 유치원들은 오후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과학, 한자, 코딩, 승마까지 가르치기도 한다.


영어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교육과정 지침을 따르는 공립 유치원들은 외면받고 있다. 이혜정 교사는 "계양구에 있는 공립 유치원의 약 20개 학급 중 정원을 채운 곳이 없다"고 했다. 공교육은 유치원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 이씨의 지적이다. 송도의 유치원 교사 김선희씨는 "영어 유치원에서 공립 유치원으로 되돌아오는 케이스를 1년에 한 번씩은 목격한다"며 " 아이들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고 했다. 유치원 때부터 '사회적 부적응'을 경험하며 고통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선희 교사는 월요일마다 유치원 반 아이들에게 주말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게 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일부 영어 유치원에서 온 아이들에게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이가 색연필 잡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는 "틀릴까 봐서요"라고 했다. 김 교사는 "그림 그리기까지, 모든 것을 '평가'받는데 길들여져 있다보니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경쟁으로 느끼는 듯했다"면서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아이가 다니던 영어 유치원에서 학습진도가 느리다고 혼자만 따로 학습을 시켰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평의 박은정 교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이가 체벌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단어를 쓰더라는 것이다. 박 교사는 "진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캐묻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는 처음엔 자율적으로 놀이 활동하는 데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밤 7시나 9시가 돼서야 집으로 향하는 풍경은 인천에서도 낯선 것이 아니다. 이수진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 가장 염려되는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꾹 참고, 힘든 티 내지 않는 아이들"이라면서 "5세 고시, 7세 고시 합격하고 좋은 대학 가도 어린 시절의 결핍은 어떻게든 나타난다"고 했다. 이 교사는 "지금도 학원 많이 다니는 아이들 중엔 ADHD(주의력결핍증후군)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부모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박은정 교사도 "학원 5~6개씩 다니는 아이들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신경이 날카로울 때가 많다"고 했다.


[한국의 교육, 길을 잃다]②"유치원생이 '진짜 놀아도 되나요' 물어요" 2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 자리한 영어학원 외벽에 유치부, 초등부 모집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진형 기자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받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3구 거주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불안장애로 인한 건강보험료 청구 건수는 2020년 1037건에서 2024년 3309건이 됐다. '영어 유치원'이 몰린 강남 3구 문제만도 아닌 것이, 전국적으로도 2020년 1만5407건에서 2024년 3만2601건으로 2배 늘었다.


유치원기의 고통은 청소년기로 이어진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조사에선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했던 청소년' 중 학업 문제를 이유로 꼽은 비율이 15.0%나 됐다. 2021년 첫 조사 때 4.7%의 3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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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교사는 "혼자 신발 신고 화장실 가서 뒤처리하는 것을 배울 나이에 하루 5~6개씩 학원을 다니다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놀아야 할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김선희 교사는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의무적으로 2시간의 자유놀이 시간은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놀이라는 것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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