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관세에 中企 타격 현실화
수출 바우처 경쟁률 높아 지원 역부족
서울 마포구에서 거리측정기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신모씨는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에 따라 미국에 납품하는 수출 물량을 컨테이너 배송에서 개별 배송 방식으로 바꿨다. 운송비 측면에선 컨테이너 배송이 훨씬 저렴하나, 고관세를 피하기 위해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9일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유예'를 공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신씨는 배송 대기 중이던 물량을 다시 컨테이너 포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커다란 손실을 떠안게 됐다. 신씨는 "컨테이너 포장을 전부 뜯고 개별 배송을 준비했다가 다시 패킹하는 과정에만 수천만원이 들었다"며 "언제까지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질지 몰라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점이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공표와 유예를 거듭하는 '안갯속 관세' 국면이 이어지며 우리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가 수출 피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긴급 수혈 지원금을 투입했으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효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2월18일부터 수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전국 15개 수출지원센터에 설치한 '관세 애로신고센터'에 접수된 수출 애로는 530여건이다. 주로 해외 납품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고 있거나 납품 기일이 무기한 연기돼 손실을 안게 된 경우였다. 그런데 최근엔 트럼프 행정부의 '밀당'이 거듭되고 불확실성이 가중됨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피를 못 잡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중국을 거쳐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산 중간재를 사용해 미국에 판매하거나, 중국 OEM(주문자 상표 부착) 공장에서 상품을 위탁 제조해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 당장 양국의 협상 결과에 따라 포장·배송 방식 등이 달라지게 됐다. 충남에서 계량기 제조업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고 해도 이를 국내로 들여와 소비자에게 개별 배송할 경우 일정 가격 이하에 한해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아직 양국이 협의 중이다 보니 배송 방식을 결정하지 못해 무기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납품하지 못하고 창고에 묶여 있는 물량만 수십억원 규모"라고 했다.
정부가 내놓은 '수출 바우처' 등 지원책의 지원 규모가 작고 선발 경쟁률이 높아 현장에선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단 목소리도 나온다. 중기부는 관세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한 '수출 바로프로그램'에 290억원을 투입했다. 수출 바로프로그램이란, 기존에 통·번역·컨설팅·운송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수출 기업들에 바우처 형식으로 지원하던 수출 바우처 사업을 1개월 이내 신속 집행하도록 한 일종의 패스트트랙 전형을 말한다. 접수가 완료되면 기업의 생산 기반 시설, 기술의 차별성, 수출 증가율, 수출 다각화 노력 등의 요건을 심사해 최종적으로 700여개의 기업이 선발된다. 지난해 모집한 2차 수출바우처 사업의 경쟁률은 6.8대 1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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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유모씨는 "정부 지원 정책 자체는 환영하지만, 그동안 수출 바우처 지원 사업에만 4번 이상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올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단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며 "정확한 심사 기준과 배점을 알지 못해 떨어진 이유를 추측할 수 없는 점과 특성상 수출 다변화를 꾀하기 힘든 업종이 있음에도 심사 요건에 '수출 다각화 노력'이 우대 사항으로 포함된 점은 아쉽다"고 했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계기로 일시적으로나마 지원 항목별 예산의 규모를 재조정 또는 확충해 더 적극적으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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