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미 2+2 협상, '저자세 외교'는 안된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121812443957312_1734493480.png)
"자신을 존중하는 자를, 사람은 항상 존중한다(自重者人恒重之)."
중국 외교 담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을 넘어 외교의 본질을 짚는다. 외교든 협상이든, 스스로를 낮추는 순간 협상력 또한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기보다 스스로의 품격과 절제를 지키는 것. 그것이 외교의 길이라지만, 그 모든 전제에는 자존이 있다. 외교는 상대의 강약보다 스스로의 무게에서 출발한다.
최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파이낸셜타임스(FT) 등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발언을 들여다보면, 이 고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에 대해 그는 "맞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보와 기술이전 등 과거 미국의 지원에 대한 감사도 언급하며 "한미는 진정한 동맹"이라는 표현도 덧붙였다.
한국은 분명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다. 그러나 통상은 다르다. 동맹은 안보의 언어지만, 통상은 국익의 언어다.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며 '관세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쉽게 외교적 성의로 포장될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밀어도 된다"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와 철강, 반도체 등에 대해 상호관세 25%를 부과했고, 일부는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한국 수출의 핵심 품목들이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다.
경제는 힘의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통상은 분명히 국익의 계산이 전제되는 영역이다. 한국이 무역 규범을 근거로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정당한 이익을 요구하는 건 '반미'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동맹국에도 예외 없는 '관세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여기서 '저자세 외교'는 단기적 안정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공정한 거래를 일상화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업계에서는 "한국이 반발하지 않으니 일본이나 EU보다 더 쉽게 밀린다"는 우려도 들려온다.
무조건적으로 맞대응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협상의 여지를 유지하며 최소한의 카드와 태도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견제 태세 없이 미리 항복을 선언하듯 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협상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다. 강한 파트너십은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되며, 실질적 균형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오는 24일 한미 재무·통상 장관 간 '2+2 고위급 통상협의'가 열린다. 겉으론 상호 존중, 협력, 윈윈을 말하지만 실상은 국익의 밀고 당기기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LNG 수입 확대, 조선 협력, 일부 기술이전 제한 완화 등을 카드로 관세 유지 혹은 조건부 면제를 저울질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관세 몇 퍼센트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정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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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한대행의 외신 인터뷰가 정중한 외교적 수사로 남을지, 아니면 스스로를 가볍게 만든 선언으로 기억될지는 협상단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진정한 동맹은 고개를 숙일 때가 아니라, 눈을 마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되새길 때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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