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행 지명 8일 만에, 헌재 가처분 인용
헌법소원 결정까지 지명 효력 정지
헌재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 위험…긴급한 필요 인정"
가처분 이후 헌법소원 결정 남아…4가지 시나리오
헌법재판소는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한 것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한 대행이 두 사람을 헌재 재판관 후보로 지명한지, 8일 만이다. 효력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진 만큼,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가처분과 함께 제기된 9건의 헌법소원에 대한 결론이 날 때까지 정지된다. 이에 따라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은 6월 3일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본안인 헌법소원 결정이 5월 첫 주를 넘길 경우, 헌법소원 인용 여부와 상관없이 차기 대통령이 새 후보자를 지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행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법무법인 도담의 김정환 변호사의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헌재는 "신청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고, 국회의 인사청문 실시 여부 등과 관계없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으므로 가처분 인용을 통해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현시점에서는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할 것임이 확실히 예측된다고 볼 수 있고, 헌법소원심판의 종국결정 선고 전에 이 사건 후보자가 재판관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그렇다면 이 사건 가처분신청의 본안심판이 명백히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당사자적격·긴급성·비교형량 등 가처분 인용 요건이 충족됐다고 봤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의 인용은 ①당사자적격이 인정돼 본안심판으로 다퉈볼 만하다는 전제하에 ②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거나 ③효력을 정지시켜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면 ④가처분 인용 후 본안 기각 시 불이익과 본안 인용 시 불이익을 비교 형량해서 후자의 불이익이 클 경우 이뤄진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측이 지난 10월 제기한 헌법재판소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때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헌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가처분 심리에 속도를 내왔다.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은 한 대행의 재판관 후보자 지명 이튿날인 9일부터 접수가 잇따랐고, 헌재는 신청 하루 만에 주심 재판관으로 마은혁 재판관을 지정했다. 11일에는 사전 심리 성격의 '3인 지정재판부' 심리를 마치고, 9인 전원재판부에 사건을 회부했다. 헌재는 전원재판부 평의를 14일부터 매일 열었다.
앞으로 변수는 헌재의 헌법소원 인용 여부와 선고 시기다. 헌법소원은 필요에 따라 변론기일을 열기도 하지만 통상 서면심리를 통해 6명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된다. 인사청문회법상 대통령이 지명을 하면 국회는 20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를 마쳐야 하고, 청문 기간은 1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시나리오는 크게 4가지다.
헌재가 헌법소원 사건을 위헌으로 판단할 경우, 한 대행의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2인의 재판관 후보자 지명은 원천 무효가 되고 2인의 재판관 지명 몫은 차기 대통령에게 넘어간다. 야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에는 새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2인의 새 재판관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헌법소원 사건이 기각·각하 돼 한 대행의 지명 효력이 인정될 경우, 선고 시점과 새 대통령의 출신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지명부터 가처분 인용 결정까지 걸린 기간은 8일이지만, 인사청문요청서가 제출·접수되지 않아 인사청문회법상 국회에 남은 시간은 최대 30일. 선고가 6월 3일 대통령 선거에 임박해서 나오면 시나리오는 두 가지로 갈린다. 여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한 대행의 지명을 이어받아 임명할 가능성이 있지만, 야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한 대행의 지명안을 철회하고 새 후보자를 지명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각·각하 선고 시점이 4월말~5월 첫주에 나오면 한 대행은 인사청문회법상 남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 기한을 기다려 대통령 선거 이전 본인이 지명한 두 후보자를 기존대로 임명할 수 있다. 국회가 인사 청문 보고서를 채택·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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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헌법소원이) 장래 기본권 침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인데, 현재 시점에서 확실히 예측될 경우 예외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각하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대통령 궐위 시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넓다고 보는 입장도 있기 때문에 기각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인용되는 것이 맞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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