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만류에도 "나라 어렵다" 학도병 입대
6·25 당시 "아직 어리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부친의 만류에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도병으로 참전, 18세의 나이로 산화한 고(故) 주영진 일병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 10월 경북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7사단 소속 고 주영진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로써 그동안 발굴된 1만1400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 중 신원을 확인, 가족 품으로 돌아간 분은 총 251명이 됐다.
고인은 1928년 2월 인천 강화군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부친을 따라 전북 전주시에서 자랐고 전북공립중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학업에 열중해 집안의 기대가 컸다고 한다.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자 친구들과 함께 전라북도 남원시까지 걸어가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당시 고인의 부친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군대에 안 가도 된다"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고인은 "전쟁이 안 났으면 모르는데 전쟁이 나서 나라가 어렵기에 빨리 가야 한다"라며 집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고인은 1950년 8월 대구 제1 훈련소에 학도병으로 합류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시간도 없이 전선에 투입됐으며, 국군 제7사단에 소속으로 '기계-안강 전투(1950년 8월 9일∼9월 14일)'에서 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참전한 지 겨우 6일 만의 일이다.
기계-안강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 국군 수도사단이 7사단 3연대를 배속받아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 일원에서 북한군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 전투다.
고 주영진 일병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국유단은 지역별 전사 연구를 기초로 병적부, 전사자명부를 분석해 전사자 본적지를 확인한 후 행정관서의 협조를 통해 유가족의 소재를 추적했다. 그 결과 2022년 탐문관이 직접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유전자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정밀하게 유전자 재분석을 실시한 결과 최종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이날 인천 강화군의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형제는 모두 고인이 됐고 친조카인 주명식(76)가 집안의 대소사를 담당하고 있다. 주 씨는 삼촌인 고인의 영향을 받아 학군사관(9기) 장교로 임관해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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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는 "유해를 발굴해주시고 삼촌을 영면하게 해주신 국방부 관계자분들께 큰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호국의 성지 대전현충원에 삼촌을 모시게 되어 큰 영광"이라면서 "드디어 조상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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