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열린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
“글로 남기지 않으면 삶도 사라진다”
"나는 잊힌 이들을 기록해왔습니다. 모국어로, 한 사람의 삶을 지워지지 않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광주 고려인 마을이 지난 11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 공원에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과 '중앙아시아로 건너간 사할린 한인들 특별전'을 열었다. 개막식과 더불어 마련된 이야기 공연 무대에는 사할린 출신 한글 작가 이정희가 올라 자신의 삶과 문학을 풀어냈다.
이날 행사는 고려인 마을 주민과 국내외 방문객, 고려인 마을관광청 해설사 등이 함께한 가운데, 고려인 어르신들로 구성된 아리랑 가무단의 축하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진 개막식과 문화행사는 고려인의 이주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삶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야기 공연에서 이정희 작가는 사할린 출생 고려인 2세로서의 성장기부터 모국어 신문사 기자 생활, 문학 창작과 활동의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는 부모 세대의 사할린 이주 배경, 한국어를 익히게 된 계기, 사할린 한인 학교 시절의 기억을 전하며 "차별 속에서도 모국어를 놓지 않았던 것이 나를 지켜준 힘"이라고 말했다. 중앙아시아로의 유학과 이주, 기자로 일했던 당시의 경험도 생생히 전달됐다.
이 작가는 고려인 신문사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를 통해 문학과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71년 단행본 '시월의 햇빛'에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작품을 수록했고, 이후 30여 편의 단편소설과 희곡 '계월향'을 창작해 고려극장 무대에 올렸다. 특히 2002년 단편소설 '그날 밤'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외한인문학대상을 수상, 2005년에는 독일 베를린 국제 문학예술 아카데미(모스크바 지부)로부터 '황금 왕관 훈장'을 받았다.
그는 "'그날 밤'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며 "그 안에 시대의 상처와 여성의 내면을 담아내고 싶었다. 지금도 그 울림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국어 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느낀 보람과 고려인 2세대의 언어 계승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모국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정체성과 정신의 뿌리다. 그걸 놓치면 민족의 기억도 함께 지워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으로의 영주 귀국 과정에서 겪은 정착의 어려움과 제도적 미비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에서 겪는 문화적 소외와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은 한국어로 글을 쓰며, 잊힌 이들의 삶을 기록해온 일"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인 마을 관계자는 "이정희 작가의 이야기는 고려인의 역사, 아픔, 꿋꿋한 삶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며 "앞으로도 고려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해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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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려인문화관에서 진행 중인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과 '중앙아시아로 건너간 사할린 한인들 특별전'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다음 달까지 이어진다.
송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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