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 판결문 낭독 이후 재조명
지난 4일 전 국민의 눈과 귀가 헌법재판소에 쏠렸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12·3 계엄 선포 이후 122일 만에 대통령이 파면됐다. 함께 주목받은 인물은 바로 재판부를 이끈 문 대행이었다.
문 대행은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낡은 교복과 손때 묻은 교과서를 물려 입으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평생을 나눔에 바친 독지가 김장하 선생을 만나게 된다. 김 선생의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4학년까지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어른 김장하였다"고 말한다.
김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묵묵히 도왔다. 사비 100억원 이상을 들여 학교를 세웠고, 39세였던 1983년에는 진주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해 1991년 국가에 기부했다. 김 선생은 "내가 배우지 못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며 번 돈의 대부분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또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도 마련하는 등 어려운 이웃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문 대행은 훗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생님은 제게 자유를 기반으로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차별을 줄이며, 박애로 공동체를 잇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사법시험 합격 후 인사를 드리러 간 자리에서 들은 김 선생의 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네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문 대행은 이 말을 되새기며 "법관의 길을 걸어온 27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르게 관철되는 걸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라 여기며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관으로 임명되더라도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이 이야기는 2022년 경남MBC가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어른 김장하'를 통해 전해졌다. 지역 방송사가 만든 작은 다큐의 울림은 거셌다. 이 시대 진정한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반응을 얻으며 젊은 세대에도 호응을 얻었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지금 뜨는 뉴스
다큐는 지상파 콘텐츠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고, 2023년 11월에는 극장 영화로 제작돼 3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한 온라인상에서 문 대행의 눈물 장면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보려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