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업들, 글로벌 빅테크와 잇따른 협업
"빅테크 요구사항 다 들어줘야" 불편한 진실
'을' 입장된 한국으로선 불가피한 선택
AI기술 독립, 인재확보 시급해
요즘 우리나라 인공지능(AI) 업계에서는 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손을 잡는 게 유행이다. 카카오는 오픈AI와 협업하고(2월4일), LG유플러스는 구글과 함께 AI 공략에 나섰다(3월4일).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공지능 전환(AX)딜리버리 전문센터’를 만들었고(3월5일), 네이버클라우드는 엔비디아와 동남아 AI 공략을 시작했다(3월21일). 아직 어딘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SK텔레콤이 외국 빅테크와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도(3월3일) 빼놓을 수 없는 협업 사례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이 더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협업했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식은 두 가지 궁금증을 불러온다. 글로벌 빅테크가 한국 기업과 손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쯤 AI 자립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 빅테크와의 협업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만난 IT 업계 고위 임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AI 사업을 같이하기로 할 때 협상을 하잖아요. 말 그대로 껍질까지 다 벗겨서 내놓으라는 식이에요. (해외 빅테크들이) 우리한테 선물을 주려고 협력하는 건 아니니까요." 말이 좋아 동맹이지 알고 보면 ‘갑과 을’의 계약이나 다름없다는 고백이다.
또 다른 통신사 임원의 말은 더 신랄했다. "해외 빅테크들도 국내 기업 한 곳에만 연락해보는 게 아니에요. 여기저기 다 접촉하고 비교해봐요. 경쟁사 중 한 곳은 서울 근교에 짓는 데이터센터를 한 해외 빅테크가 먼저 쓰도록 계약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우리는 패를 다 까놓고 부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고, 선택은 저들의 몫이다. 그런데도 글로벌 빅테크에 기대야 하는 이유는 AI 기술이 아쉽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내 한 테크기업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너무 해외 빅테크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해당 기업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미국도 자기들이 못하는 건 다른 나라에 종속돼 있다. 일제 36년도 우리가 힘이 없어 종속된 거다. 종속되지 않으면 좋지만, 우리가 실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빨리 배워서 빨리 쓰고 빨리 따라잡는 수밖에 없다."
기술을 배우는 게 중요하지 체면이 무슨 소용이냐는 의미다. 우리가 AI 기술 독립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의존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맥락이기도 하다. 그의 바람처럼 해외 빅테크들도 무시 못 할 우리만의 AI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건 거대언어모델(LLM)일 수도, 오픈소스를 개량해 만든 새로운 AI 서비스일 수도 있다. 이미 이런 공감대는 산업계, 학계, 정치권에 형성돼 있다.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만 통과되면 '그래픽처리장치(GPU) 3만장을 구입해 국가AI컴퓨팅 센터를 만들겠다'는 정부 목표에도 파란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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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재도 끌어모아야 한다. 컴퓨팅 자원을 아무리 잘 갖춰도 이를 활용해 성과를 낼 사람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IBM 슈퍼컴퓨터를 들여왔지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방치됐던 적이 있다. 해외에서 AI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를 보태거나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방법이 있다. 일본처럼 해외 AI 연구자가 정착하도록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AI 인재 유입책을 만들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짚어볼 만한 것들이다. 끌려가지 않고 끌고 가려면, 갈 길이 멀고 바쁘다.
심나영 산업IT부 차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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