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으로 혈통 찾기, 23앤드미
파산 후 1500만명 유전자 정보 행방에 주목
정밀 의약, 암 치료 등 쓰일 수 있지만
보호 없으면 악용 우려도
미국 유전자 검사 기업 '23앤드미(23andMe)'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습니다. 고객의 유전자를 분석해 질병의 위험을 알리고 먼 조상을 찾아주는 서비스로 유명해진 기업입니다. 문제는 23앤드미가 수집한 1500만명 유전자 정보의 향후 행방입니다. 유전자 정보는 질병 치료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잘못 관리하면 제삼자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단일 세포 생물학 개척한 스타트업
23앤드미는 앤 워치츠키 대표 등이 2006년 창업한 미국 유전자 분석 기업입니다. 여러 유전자 분석법 중에서도 '단일 세포 생물학(single cell bi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회사로 꼽힙니다.
23앤드미 기술의 핵심은 SNP 유전자형 분석입니다. 우리 몸 안의 세포가 분열할 때 DNA 유전자 염기 서열을 복제하는데, 복제된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1000개의 염기서열 중 1개꼴로 변형, 즉 '오타'가 생깁니다. 이런 변형을 SNP 유전자형이라고 합니다. 23앤드미는 세포 1개 안의 SNP 유전자형 차이를 분석해 특정한 사람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샘플 수집도 간단합니다. 피를 뽑거나 몸속에 면봉을 들이밀 필요 없이, 침만 뱉으면 그 안에 담긴 세포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SNP 유전자형 차이는 약 0.1%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0.1%가 우리의 외모, 신체적 특징, 잠재적 유전병 등 다양성을 만들어냅니다. 또 SNP 유전자형의 미세한 차이를 추적해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혈통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23앤드미는 인종적 측면의 조상을 '인증'하는 서비스로 사업 초기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멜팅팟 사회인 미국에선 더욱더 열광적이었지요.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도 23앤드미 분석 서비스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꼽은 바 있습니다.
파산보호 신청 후 '1500만명 유전 정보' 행방에 관심
유명해진 23앤드미는 2021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합병을 통해 나스닥에 우회 상장했고, 시가총액이 60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주가 상승은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조상 찾기 서비스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영업 손실은 계속 늘어났고, 손실을 줄일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2023년 발생한 해킹 피해로 고객 690만명의 유전 정보가 유출된 것도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줬습니다.
악재의 여파로 2024년 초 주가는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고, 올해 3월에도 1달러대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스닥에는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진 기업의 상장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결국 지난 24일 미국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접수했고, 워치츠키 대표도 사임했습니다.
23앤드미가 그동안 수집한 1500만명의 유전자 정보는 어떻게 될까요. 데이터는 다양한 인종의 미국 고객을 중심으로 수집됐는데, 세계에서 23앤드미 보다 많은 유전자 정보를 가진 곳은 없습니다. 2위인 영국 바이오뱅크가 수집한 유전자 정보는 고작 50만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다양한 유전적 특징을 가진 1500만명의 SNP 유전자형 샘플은 수많은 과학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희소 질환을 발현하는 유전자형을 짚어 맞춤형 신약을 개발하거나, 특정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식별할 때도 유용합니다. 실제로 23앤드미는 상장 이후 수집한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바이오 테크 기업들과의 연구개발(R&D) 협력에 집중했습니다. 2023년엔 두 개의 종양 관련 신약 연구에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유전자 정보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은 23앤드미가 파산보호 신청 후 가치 있는 자산들을 매각할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 23앤드미의 단일 세포 분석 고유 기술과 수집한 유전자 정보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가 거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달 초 미국 의학 저널 '뉴 잉글랜드 의약 저널'에선 "23앤드미가 수집한 개인 정보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논문의 저자 중 한명인 글렌 코헨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23앤드미가 보유한 데이터는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이라며 "23앤드미가 데이터를 (다른 기업이나 단체와) 공유한다면 정보를 넘긴 사람들에게는 발언권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전자 정보는 만일 악용될 경우 심각한 보건·사회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기업은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의 특정 보험 상품 가입을 거부한다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감시 체계 구축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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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헨 교수는 하버드대 교내 매체인 '하버드 가제트'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아직 유전 정보가 자신을 어떤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상태"라며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의무에 유전자 분석 기업들을 포함하고,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객 차별을 미리 금지하는 법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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