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육 파행에 내년 모집인원 3058명으로 회귀
의사배출 절벽에 고육책 내놨지만…정부-의료계 신뢰 깨져
정부가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면서 사실상 지난 일 년간 추진해온 의대 증원 정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가 2년째 돌아오지 않으며 '버티기 전략'으로 맞서자 끝내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는 비판과 함께 앞으로의 증원 논의 또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의대 총장·학장단이 건의에 따라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조정하는 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단, 이달 말까지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고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당초 증원분을 모두 반영한 5058명을 정원으로 뽑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일 년 내내 지속된 의정 갈등과 의료공백을 감수하면서까지 늘려놓은 정원 2000명을 다시 되돌리기로 한 것은 해를 넘기고도 학생들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학생들의 수업 결손이 한계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2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올해 상반기까지도 겨우 2% 정도만 복귀를 선택했다.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을 이어가면서 전국 2024학번·25학번 의대생의 96% 이상이 올해 1학기 휴학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늘어난 정원에 따라 입학한 25학번 의대생 상당수도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 자칫하다간 내년엔 1만명이 넘는 의대생들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의사 배출도 끊기다 시피해 올해 시험을 통과한 신규 의사와 신규 전문의는 각각 전년도의 9%, 19% 규모에 그쳤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의대 학장들이 일종의 중재안으로 '내년 정원 3058명'을 공식 요구했고, 이를 정부가 전격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호응해 수업에 복귀할지 미지수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를 전제로 한 증원 0명 방침에 오히려 반발할까 걱정된다"며 "전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더 큰 협상 카드를 내놔야 할 텐데 다른 방안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의대를 휴학 중인 한 24학번 학생은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원 동결보다도 의대 수련환경 개선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철회"라며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만큼 수업 복귀를 전제로 한 증원 원점화 방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대생의 교육을 어떻게 지원할지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중요한 것은 현재 의대 24학번, 25학번을 합친 7500여명에게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 증원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다니 심히 당혹스럽다"며 "정부가 의사인력 정책 추진에서 또 한 번 물러났으니 이제 의료계는 의료 개혁마저 백지화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다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정원을 논의할 방침이었지만 위원회 구성과 출범까지도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정부는 추계위를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 기구로 두고자 했는데, 의협에서는 추계위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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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추계위를 거쳐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정하기엔 물리적으로 어렵다 보니 올해만(2026학년도) 각 대학 총장이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이라며 "향후 의대 정원은 추계위에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료계와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원칙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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