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시행 이후 맞이하는 첫 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주환원' 요구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올해는 최근 몇 년간 '주주행동주의'를 이끌어온 행동주의펀드보다는 플랫폼을 통해 결집한 '개미'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주주제안이 활발하다. 외국인 주주들의 적극적인 한국행(行)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10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807개사 중 올해 주주총회 개최 계획을 밝힌 기업은 414개사다. 이 가운데 70%에 육박하는 287개사가 오는 24~28일 주총을 진행한다.
특히 올해는 국내 상장기업의 밸류업 계획이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영되는 첫 주주총회 시즌이라는 점에서 '주주환원'이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후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상장기업은 총 100개사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개사가 주주환원 핵심 지표로 '현금 배당에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규모를 더한' 총주주환원율을 활용하고 있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100개사는) 기업 수 기준으로는 전체 상장사의 약 3%에 불과하지만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약 38%"라며 "올해 주총에서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주주 행동주의 활성화로 자금 여력이 되는 기업이라면 배당 확대 요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주주환원 확대 압박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주총을 앞두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이 이를 의식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확대 등을 결정한 상태다.
이른바 '개미 연대'의 결집도 올해 주총 시즌의 관전 포인트다. 지난해까지 행동주의 펀드들을 중심으로 한 공세가 거셌던 반면 올해는 액트, 헤이홀더 등 연대 플랫폼을 중심으로 뭉친 소액주주들의 행보가 한층 눈에 띈다. 앞서 이마트 등에서 수용안을 끌어낸 소액주주들은 이미 밀리의 서재, 티웨이항공, 롯데쇼핑 등을 상대로도 주주행동에 나선 상태다. 주요 화두로는 앞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으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집중투표제가 손꼽힌다. 집중투표제 도입 시 소액주주들이 뭉쳐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마트·롯데쇼핑·코웨이 등 상당수 기업이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외국인 주주들의 참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 역시 올해 주총 시즌을 앞두고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올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한국으로 와 주총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질문도 하려는 계획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면서 "일본에서 주주 권리 찾고자 했던 모습이 한국으로 건너오는 국제적 흐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행을 결정한 외국인 주주들 사이에서는 계엄, 탄핵정국 속에서 동력을 상실한 밸류업 정책을 둘러싼 실망도 읽히고 있다. 이 가운데 주주 권익 확대를 위한 상법개정안 논의가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것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이 한국으로 쏠리고 있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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