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영향 너무 크다" 세계 은행 총재들, 한목소리로 경고(종합)

연말 관세 영향 가시화…소비재부터 영향 갈듯
글로벌 공급망 붕괴·재편 인한 인플레 압박
우려 큰 유럽…"유럽 내 무역장벽 철폐 필요"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BOE, IMF, EC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멕시코와 캐나다에 일괄 25%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트럼프식 관세 정책이 전 세계에 무역 마찰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올 연말에는 관세 영향이 가시화되며 음식·의류·전자 제품·가구 등 소비재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이날 영국 하원 의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영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위험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배석한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회(MPC) 위원인 앨런 테일러도 "무역이라는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리면, 우리는 결국 어떻게든 손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일리 총재는 테일러 위원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무역은 성장을 뒷받침하며, 개방성은 혁신과 아이디어 확산을 촉진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상대국 수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거나 재편될 경우 경제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역시 전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IMF 행사에 원격으로 참석해 "우리는 무역이 더 이상 과거처럼 세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새 미국 행정부가 무역, 조세, 공공 지출, 규제 완화, 디지털 자산 등에 대한 정책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른 정부들도 정책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전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행사에서 "관세가 인플레이션과 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올해 말쯤부터 일부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특히 소비부터 관세 영향이 빠르게 반영될 것이란 관측이다. 연준의 결정에 있어서는 "무역 정책뿐만 아니라, 재정 정책과 규제 정책 등 다른 정책 변화들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중한 접근을 시사했다.

유럽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집중 공격을 시사한 만큼 우려가 더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EU는 우리에게 매우, 매우 나쁜 짓을 해왔다"며 "따라서 그들은 관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보유한 부가가치세를 관세장벽으로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EU 부가세 지침에 따르면 EU에서는 부가세 기본 세율로 최소 15%를 부과하며 일부 국가는 27%에 달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날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면 관세를 선택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현명했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전면적인 관세는 반드시 기대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더 선택적이고, 특정 대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미국 관세 정책에 대비해서는 유럽 내 무역장벽 철폐를 주장하며 "유럽은 단일 시장을 구축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상품과 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동하는 데 장애물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들 총재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확대 및 이에 대한 각국의 보복 조치로 인해 세계 경제가 충격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까지 인상했으며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예정대로 25%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오는 12일에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발효할 예정이며, 다음 달 2일부터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관세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한편, 베일리 총재는 또 미국이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금융 기구에서 탈퇴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이런 기관을 떠나는 것은 세계 경제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그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다자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