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
신용등급 하락에 운영자금 조달 어려움 예상
홈플러스 측 "잠재 자금이슈 선제 대응"
노조는 소유주 MBK 차입 경영 문제 지적
향후 갈등 예고…유통가도 상황 예의주시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유동성 위기로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노동조합 측이 회사 소유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무리한 차입 경영을 자금난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갈등을 예고했다. 내수침체와 e커머스를 비롯한 온라인의 공세에 경쟁력 저하를 고심하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도 홈플러스의 이례적인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4일 법조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이날 오전 홈플러스가 신청한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이날 자정 3분께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지 11시간 만이다. 홈플러스 측은 "최근 공시된 신용평가에서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관련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며 "이번 회생절차 신청은 사전 예방적 차원"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은 지난달 28일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렸다. 평가사들은 등급 강등 이유로 홈플러스의 이익 창출력 약화,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 부담을 꼽았다. 홈플러스 측은 올해 1월31일 기준 부채비율과 직전 12개월 매출은 각각 462%와 7조462억원으로,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부채비율은 1506% 개선되고 매출은 2.8% 신장했으나 이 같은 개선사항이 신용평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단기 유동성 확보에 문제가 발생해 납품업체와 협의를 통해 대금을 한두 달 뒤에 정산해주면서 지연 이자를 주는 방안을 써왔다. 당장 물품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번 신용등급 하락으로 금융기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운영자금 규모가 줄어 오는 5월께 자금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해 홈플러스가 추산하는 금융부채는 약 2조원이다.
노조 "자금난은 구조적 문제이자 예견된 사태"
홈플러스는 대형마트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구매채널의 온라인 이동, 쿠팡 및 중국 C커머스 등 대형 e커머스 업체의 급격한 성장으로 오프라인 채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짚었다. 반면 홈플러스 노조 측은 이번 사태가 예견된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최근 발표한 '투기자본 MBK의 홈플러스 먹튀 매각보고서'에서 "홈플러스 경영 위기의 원인은 포화상태에 이른 마트 산업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발생할 수 없는 홈플러스 구조 문제 때문"이라며 "이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발생한 과도한 차입금과 이에 대한 이자 비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MBK는 2015년 9월 7조2000억원을 들여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LBO 방식은 매수 대상 기업의 자산 등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조달해 인수하는 방식이다. MBK는 인수대금 중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의 대출과 MBK 측의 인수금융 대출로 충당했고, 나머지 2조2000억원은 블라인드 펀드로 자체 조달했다. 결과적으로 인수를 위해 조달한 빚과 이자를 홈플러스가 갚는 구조다.
MBK는 홈플러스를 경영하면서 2018년부터 점포 20여개를 매각하거나 계약 종료를 통해 폐점하고, 매장과 각종 부동산을 팔아 빚 4조원가량을 갚았다. 2019년 6월 140개였던 홈플러스 매장 수는 현재 127개로 줄었다. 그럼에도 홈플러스의 재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인수 직후인 2016년 매출 7조9246억원, 영업이익 2938억원을 기록했으나 2022년과 2023년에는 매출이 6조원대로 줄었고, 이 기간 각각 2602억원과 199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6년 1265억원이던 당기순이익도 2023년 -5743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MBK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지난해 6월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 부문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별도 매각하는 방안도 모색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MBK 인수 이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지출된 이자 비용 합계는 약 2조9329억원으로 이는 해당 기간 영업이익 합계인 4713억원보다 무려 2조5000억원이나 많다"면서 "현재 홈플러스는 MBK의 LBO 인수방식으로 인해 아무리 벌어봐야 이자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처지이고, 이자 비용 때문에 순이익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조합원 및 가족 약 2만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며 "회사는 '정상 영업유지'라는 모호한 입장 외에 구체적 사유와 계획을 밝히지 않아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사측의 투명한 정보공개를 촉구하고 이달 중 대의원대회 열어 조합원 의견을 수렴한 뒤 회사의 답변에 따라 집회, 파업 등 공동 행동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홈플러스 측은 "신용등급이 하락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자금 이슈를 예방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회생절차를 신청했으나 임직원과 노동조합, 주주 모두가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회생절차는 극약 처방"…유통가 파장 촉각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동종업계는 오프라인 판매 채널이 처한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신청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영업력이 저조한 점포 효율화를 시도하거나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복합쇼핑몰, 창고형 할인점과 연계한 하이브리드형 매장을 선보이는 등 돌파구를 찾는 업계 트렌드와 결이 다른 선택지여서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마트 운영의 핵심은 매장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인데, 홈플러스는 그동안 수익이 나는 이른바 '알짜' 점포를 매각하면서 몸집을 줄여왔다"며 "회생절차를 통해 결과적으로 채무 부담에 대한 우려를 키운 셈"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회생절차 신청은 사업의 지속성을 고려하는 회사들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라며 "특히 대형마트의 경우 다수 협력업체의 생존이 달린 만큼 신중한 문제인데, 이번 결정으로 홈플러스에 대한 의존도가 큰 중소업체가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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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개시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협력사에서 홈플러스 납품 대금에 대한 채권 추심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홈플러스 측은 이번 회생절차 개시로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받는 대신, 협력업체와의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회생절차에 따라 전액 변제되고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사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 결정'도 함께 발령해 홈플러스의 대형마트, 익스프레스, 온라인 등 모든 채널 영업도 정상적으로 이뤄진다. 홈플러스 측은 회사의 부동산 자산이 4조7000억원 수준으로 회생 계획이 확정되면 금융채권자들과 조정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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