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로 본 교황 선출과 한국 정치
교황은 생전 후계자를 뽑을 투표 자격을 가진 추기경들을 임명한다. 언론과 비평가들은 그들이 현재의 교황과 닮은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단한다.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인선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결과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았다. 1878년부터 25년간 교황 자리에 있었던 레오 13세가 대표적 예다. 그는 가톨릭교회를 현대식으로 만들어 과학적 성경 연구를 고취하는 동시에 사회교육을 개시했다. 또한 세속 민주주의 체제와 신중하게 화해하는 정책을 펴서 가톨릭 군주제와의 '성스러운 동맹'을 부활시켰다. 바통을 넘겨받을 후보자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국무원장이던 마리아노 람폴라가 거론됐다. 그러나 1903년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사람은 이탈리아 정부에서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던 베네치아의 총대주교 지우세페 사르토(비오 10세)였다. 그는 가톨릭 사상을 새로운 세기에 화해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했다. 적잖은 신학자들의 입을 막고 일부를 파문했다.
투표권이 있던 추기경들은 이런 성향을 알고도 왜 사트로를 뽑았을까.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람폴라의 입후보를 반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쏠림현상이 사라지면서 문제를 재고할 계기가 마련됐는데, 대다수 선거권자가 단순히 변화의 폭을 늦춰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1958년 안젤로 론칼리(요한 23세)가 비오 12세를 계승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비오 12세는 교황 초기에 '생각하는 교회'를 추구했으나 말년에는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반대로 론칼리는 교회를 현대화하고자 했다. 비오 12세가 거부한 그리스도교 종파 통합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변화의 흐름은 콘클라베까지 이어졌다. 추기경 쉰다섯 명 가운데 론칼리와 함께 무슨 일을 해나갈 수 있을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전 교황과는 다른 후계자를 뽑아야 한다는 틀이 형성됐다.
이런 경향을 콘클라베 심리학에선 진자의 법칙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교황 임기에서 창조적으로 일한 시기는 10년을 넘지 않는다. 활기찬 정열은 반복으로 바뀌고, 새로운 사상은 교황청 관료들이 정해놓은 틀에 막힌다. 오래 존속된 제도가 말기에 이르면 어느 정도의 불만은 생기게 마련이다. 추기경들은 크게 두 가지 기조로 이를 해결해왔다. 하나는 기다림이다. 지난 콘클라베에서 진 쪽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예컨대 람폴라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1914년에 다시 모여 자코모 델라 키에사(베네딕토 15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다른 하나는 결점을 바로잡을 후보자 물색이다. 이전 교황이 해결할 수 없었거나 지나친 문제를 수정할 사람을 찾는다. 과거와 똑같은 방식이 이어지면 결실을 얻는 데 수년이 걸리므로 다른 방법으로 균형을 잡을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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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는 이 같은 순환을 로렌스(레이프 파인스) 추기경을 통해 깊게 들여다본다. 그가 투표 과정에서 목격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은 야욕과 추문, 암투 등으로 얼룩져 있다.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어떻게든 갈등을 해소해 진일보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은 다르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그 차이를 로렌스의 말로 들려준다. "확신은 화합과 관용의 가장 큰 적입니다. 확신만 있다면 믿음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는 교황을 내려달라 기도합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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