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닉슨·카다피 등 독재자 19명 소개
전형적인 독재자의 흥망성쇠 안내해
독재자들의 등장은 대부분 화려했다. 그들은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 개혁과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한 번 손에 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을 용기는 없었다. 오히려 욕심만 커졌다. 그리고 결국 대부분은 불명예스럽게 권좌에서 쫓겨났다.
수상한 시대에 의미심장한 책이 나왔다. 신간 ‘쫓겨난 권력자’다. 이 책은 일종의 '독재자 소개서'다. 현대 세계사에서 독선과 타락으로 무너진 여러 권력자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저자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부터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까지, 독재자 19명의 권력 장악 과정과 몰락을 조명한다. 시대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의 몰락에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처럼 등장해 신화를 써 내려가지만, 결국 그 신화에 스스로 갇히고 만다는 것이다. 이후의 과정은 뻔하다. 진실을 외면하고 직언을 무시한다. 아첨과 찬양만 귀담아듣는다. 자신을 맹렬히 신격화하며 결국 그 신화의 노예가 된다.
더 무서운 점은 몰락한 그들의 과오를 정당화하면서까지 여전히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맹신의 역사'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반복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해 이탈리아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독재자 무솔리니의 증손자 로마노 무솔리니가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넣자, 관중들은 단체로 '무솔리니'를 연호하며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직 이탈리아 사람들은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동경하고 진하게 추억하고 있어 씁쓸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계엄 사태가 벌어지며 유사한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몰락과 그들이 역사에 남긴 혈흔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역사는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아쉽게도 저자는 이 질문에 천착하지 않는다. 독재자를 선정한 기준이나 배경도 딱히 설명하지 않는다. 책은 그저 여러 독재자를 나열하고, 그들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이 책이 학술 논문은 아니다. '독재 방정식'을 면밀히 따져보고, '독재 추종자'의 심리와 양산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은 학자의 몫이다. 이런 '독재자 소개서'도 충분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각심과 교훈을 줄 수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조금 더 깊이 있는 분석을 담았길 바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책은 현시대 권력자들에 대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이 포고되던 날 "대체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권력자라면 이 단순한 질문에 반드시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질문에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이미 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며 "그 독재의 끝이 어땠는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자 박천기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와 한양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KBS에 프로듀서(PD)로 입사해 교양, 다큐멘터리, 음악 등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생방송 오늘, 가로수를 누비며,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엄정화의 가요광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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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권력자 |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84쪽 | 1만8800원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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