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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으로 중증외상센터 지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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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중증외상센터]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출간한 허윤정 단국대병원 교수
"후배의사 없어도 사명감으로 버티는 중"
"최선을 다한 진료 결과에 잘못된 사법적 판단 안돼"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인력은 늘 부족하고…. 응급환자를 받아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넘기고, 수술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외상센터 의사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해요. 하지만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잠깐 사이에 문득 생각나고, 유독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떠나지 않는 환자들이 있죠."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으로 중증외상센터 지키지만…" 허윤정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교수. 단국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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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에세이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를 펴낸 허윤정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교수(37)는 16일 아시아경제 기자와 만나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을 살려내거나 사망 선고를 하면서 겪은 생각과 감정들을 써 내려가며 내 손을 거쳐 간 환자들을 계속 기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학창 시절부터 줄곧 외상외과 의사를 꿈꿔왔다.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과 4년간의 외과 전공의 과정을 거친 후엔 또다시 외상외과 세부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았다. 이왕이면 환자가 많은 곳에서 제대로 배우겠다는 결심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단국대병원은 바로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서해안 쪽으로는 산업단지들이 위치하는 데다 주변 곳곳에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다. 대규모 교통사고부터 추락이나 기계 끼임, 절단 등과 같은 산업현장 사고, 경운기나 트랙터 전복으로 인한 농기구 사고 등 외상 환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때로는 폭행이나 상해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가 실려 오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자해나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되살려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외상센터 의사는 오로지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생각하며 가장 빠른 선택을 내리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단국대병원 외상센터엔 그만큼 중증외상 치료에 진심인 선배들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외과의사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허 교수는 "외상센터로 이송되는 환자 중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안정된 삶을 살던 이는 별로 없다"며 "몇 년이 지나도 반복되는 교통사고, 비슷한 산업재해로 인해 사람들의 몸과 인생이 부서지는 걸 보며 이런 현실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책 속에는 매일 같이 익숙한 일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치료비와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환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또다시 위험한 작업 현장으로 나서야 했던 가장의 무게, 환자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어린 생명을 향한 탄식과 미안함까지 절절하고 애달픈 이야기들이 담겼다. 한 명의 환자를 살리고 그들의 가정이 유지되게 하는 것, 사람을 치료하며 우리 사회의 병폐도 함께 고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사명이라고 믿었기에 그런 전쟁 같은 외상센터에서 버티고 또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으로 중증외상센터 지키지만…" 허윤정 단국대병원 교수가 중증외상센터에서 이뤄지는 환자 치료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조인경 기자

하지만 제아무리 저력 있는 외상센터라도 이곳 의사들은 매달 여덟 번씩 24시간 당직을 서고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과중한 업무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매일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면서도 가장 극한의 정신력과 체력이 있어야 하는 자리, 노동 강도는 최고인데 처우는 턱없이 부족한 분야가 바로 외상외과이다 보니 해마다 지원자는 줄고 사명감 없이는 절대 일할 수 없는 곳이 됐다. 허 교수는 "우리 센터에는 2020년 내가 입사한 이후 들어온 후배 외상외과 의사가 한 명도 없다"고 귀띔했다.


안타깝게도 의대 정원 논란으로 야기된 의정 갈등 사태는 환자도, 의사도 더욱 혹독한 환경으로 내몰았다. 지난 일 년간 일부 지역의 권역외상센터에선 사고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먼 지역의 외상센터로 이송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중증환자 이송체계나 치료를 위한 인프라도 상당 부분 붕괴됐다. 단국대병원 외상센터의 경우 이전엔 한 해 평균 약 2300명의 환자를 받았지만 지난해엔 그 숫자가 1370여명으로 급감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인력이 부족한 과에 해당하는 외상환자가 발생할 경우 119 구급상황센터가 연락해 와도 환자 수용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의료 사태 이전에도 우리는 주변 지역의 기능이 떨어진 다른 외상센터를 백업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우리마저 수용하지 못한 환자들은 최종 치료를 할 수 없는 어디론가 실려 가다 사망했거나 치료를 받았더라도 중증 장애가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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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실에 대한 형사 처벌과 민·형사상 소송이 남발되는 사회 분위기도 의사들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 최근 데이트 폭력에 의한 뇌경막하 출혈로 응급치료 중 사망한 환자에게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가 손해배상금 4억4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면서 의사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중심정맥관 삽입 도중 과실이 있었다며 책임을 물은 것이다. 허 교수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구하기 위한 응급수술 중에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였을 것"이라며 "이미 누누이 의사들의 필수과 기피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야기했지만 잘못된 사법적 판단이 또다시 대못을 박았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외상센터 의사로 일하는 모든 순간 나는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었다"며 "그런 위험 부담 없이 마음껏 생명을 구하는 데만 집중하게 해준다면,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진료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해준다면 더 많은 의료인이 필수의료 분야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으로 중증외상센터 지키지만…"



천안=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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