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매출 20% 차지하는 싱가포르
미국→중국 길목 '중간 거점' 의혹
블룸버그, FBI 등 당국 조사 착수 보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의 대중국 수출 제재에 빈틈이 없는지 단속에 나섰다. 최근 AI 업계 파장을 일으킨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싱가포르의 제삼자를 경유해 불법으로 엔비디아 반도체 칩을 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31일(현지시간)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당국이 딥시크가 싱가포르의 제삼자를 통해 엔비디아 반도체를 구매해 미국 AI 칩 판매 제한을 우회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과 미연방수사국(FBI) 관계자들이 딥시크가 미국이 중국에 판매를 금지한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중개업체를 활용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딥시크는 지난 1월 초 중국 항저우에서 챗봇 'R1'을 출시하면서 전 세계 AI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일부 기능은 미국의 유사한 AI 도구와 대등한 성능을 보였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AI 경쟁에서 예상보다 앞서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짚기도 했다. 중국과 AI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미국이 반도체 칩 수출과 관련해 엄격한 대중 제재 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딥시크는 자사 AI 모델 개발에 사용한 반도체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으나, 회사 연구진은 최근 논문에서 지난달 출시된 'V3' 모델이 엔비디아의 H800 칩 2048개로 훈련됐다고 밝혔다. H800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고성능 반도체 접근을 차단한 후,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위해 특별 설계한 제품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2023년 10월 H800을 포함한 여러 엔비디아 칩까지 중국 수출을 금지하면서 엔비디아는 더 낮은 사양의 H20을 개발해 중국에 판매해왔다.
이에 중국과 AI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인 미국이 엔비디아 반도체칩 수출 제재에 빈틈이 없는지 단속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엔비디아 전체 수출 물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싱가포르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길목의 중간 거점으로 지목됐다.
다만 엔비디아 대변인은 블룸버그에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매출이 중국으로의 우회 배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서에는 '송장 발행(bill to)' 장소가 기재될 뿐, '배송(ship to)' 장소는 명시되지 않는다. 많은 고객이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미국과 서방 시장으로 제품을 보낸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엔비디아의 대중국 수출에 추가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아직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논의가 매우 초기 단계라면서도 엔비디아의 H20 칩 제품으로 수출 통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을 전했다.
소식통들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도 H20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현실화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제 막 유관부서의 인원 확충을 시작한 만큼 규제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산업·무역 정책을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에 대해 '매우 강력한' 통제를 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도 했다. 백악관은 블룸버그의 논평 요청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엔비디아 측은 "AI에 대해 자체적인 접근을 추구하면서 미 행정부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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