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효성중공업 공장 가봤더니
변압기·차단기 등 전력기기 수요 폭증
"4~5년치 일감 수주한 K-전력"
다음 타자 유력한 ESS용 PCS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 산업단지 내 효성중공업 1공장. 사업장 한켠에선 PCS(전력변환장치)에 연신 전기를 흘렸다 껐다하는 테스트가 이어졌다. 올초 스리랑카로 수출되는 장비의 막판 점검을 진행한 것이다.
연말 휴무로 산업단지내 대부분 공장들은 한가한 분위기였지만 이곳만은 수출 장비의 전수 조사로 눈코 뜰 새 없었다. PCS는 직류(DC) 방식으로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에너지를 교류(AC)로 변환해 출력하거나 반대로 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전력 계통이 안정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장치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중국 CATL 등이 배터리를 생산해도 PCS가 들어가야 20피트(약 6m) 길이의 컨테이너가 결합돼 ESS를 구성하게 된다. ESS는 스마트폰으로 치면 ‘배터리 충전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전력기기 산업은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산업계의 한줄기 빛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AI 데이터센터 설치 붐 등으로 세계 전력수요가 급증하며 세계 곳곳에서 전력망 확충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전력기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호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또 대내외 경제여건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전력기기 산업은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전세계를 휩쓰는 중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효성중공업을 포함해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국내 주요 전력기기 메이커들은 2030년 일감까지 일찌감치 확보해둔 상태다.
특히 PCS는 이제 수요 폭증 시기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력기기 산업은 고전압부터 저전압을 다루는 장치로 호황주기가 넘어가는데 PCS가 올해 순서가 됐다는 얘기다. PCS는 ESS에 전기에너지를 충전하거나 저장된 전기를 출력할 때 그 흐름을 원활히 하는 장치다.효성중공업은 PCS와 PMS(전력제어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ESS 사업 시장점유율(22%)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본 것은 4㎿규모의 PCS 장비였다. 스리랑카로 수출되는 규모는 총 38㎿규모인데 이는 1만7480가구 가량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제어할 수 있는 규모다. 효성중공업에서 생산하는 PCS 제품의 60% 이상은 수출된다. 현장을 안내한 문성민 효성중공업 팀장은 "PCS를 시험운전시켜서 전력 역률(유효 전력과 무효 전력의 비율), 갑작스러운 사고 상황시 PCS 정지 시스템 등을 테스트 한다"며 "PCS를 비롯해 변압기, 차단기 등 전력기기를 구성하는 부품과 전선 등이 워낙 많고 복잡해 효성중공업에서 생산하는 전력기기는 전수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효성중공업 전력PU 전장 담당(상무)은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한국 산업계의 부흥과 함께 전력기기 기업들은 전력 효율을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했고 세계적인 제조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초고압 변압기 등은 40% 이상 공장 증설을 하고도 4~5년치 일감을 수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PCS 등 전력기기는 진입 장벽도 높다. 배선이 복잡해 고도의 설계와 숙련된 작업자의 수작업을 필요로 하는데 이같은 공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손에 꼽는다. 한국과 독일, 일본 정도다. 숙련공을 길러내는데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케파(생산능력)’ 증설도 녹록치 않다. ‘한국 전력기기가 없다면 전세계 전기가 멈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어 "변압기, 차단기 등과 더불어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ESS 내 핵심 장비인 PCS도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RE100(신재생에너지 100% 활용)’기조에 맞춰 민관 주도의 프로젝트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정부만해도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1.6%로 내걸고 있는데 2023년 기준 12%수준으로 향후 신재생에너지 공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 상무는 "효성중공업은 2009년 ESS 사업을 개시한 이래 15년의 실적으로 국내 및 글로벌 시장에서 250여개 사이트 설치 및 배터리 누적용량 2.6GWh 이상의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효성중공업은 ESS분야 중장기 목표로 10년내 1조 매출을 내걸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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