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대한민국 국회는 두 번째 시도 끝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성공했다. 탄핵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으며 헌법재판소는 최장 6개월 동안 이를 검토할 수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탄핵안이 통과됐다. 윤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 야당 지도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 대통령이 돼 입법부 과반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내외 정책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고 다시 대통령직으로 복귀하더라도 지지율이 낮아 의미 있는 의제를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정 공방과 정치 마비는 2025년 중반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아시아 지역에 불확실성을 가중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블랙스완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낮은 발생 확률을 뚫고 시스템 충격과 재조정을 초래한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미묘한 징후가 있었지만 위기의 규모와 타이밍은 많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기습적이었다. 한국처럼 견고하고 경제적으로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가 이런 혼란에 빠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는 2025년이 다가오면서 한국의 위기는 이러한 의문을 떠오르게 만든다. 동아시아에 또 다른 블랙스완 이벤트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동아시아 정세를 담당하는 또 다른 축인 대만에서는 격변의 조기 경고음이 감지되고 있다. 대만의 지도자인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은 야당인 국민당 및 대만인민당 연합과 입법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며 양안 관계에 대한 양극화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가오는 주요 선거에서 분열된 유권자를 통합해야 한다는 압박에도 직면해 있다. 이달 초 민진당이 신속하게 삭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결정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라이칭더 총통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처럼 가장해 유사한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와이를 경유하는 라이칭더 총통의 태평양 국가 외교 순방을 앞두고 대만 안보 당국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경고한 점도 지역 긴장감을 더했다. 그러한 훈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군사 훈련이 임박했다는 주장을 증폭시켜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부과한 영공 제한은 군사 작전과 관련이 없는 일상적인 민간 항공 통지였다고 지적했고 미국 관리들의 보고서도 대만 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비정상적인 군사 활동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대만의 지도부가 일상적인 발전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함으로써 지역 긴장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대만이 여전히 계엄령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오는 대중의 신뢰를 약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정치적 불안정의 토양을 만들 수 있다.
필리핀 역시 또 다른 잠재적 인화점이 될 수 있다. 당장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필리핀 국내 정치적 균열이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은 지난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그의 아내, 사촌을 암살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그는 소환장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2022년 대선을 휩쓸었던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의 정치적 동맹이 해체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행한 마약과의 전쟁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폭력적 정책과는 거리를 뒀으며, 두테르테 전 대통령 시대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편 두테르테 측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부통령을 소외시켜 그가 교육부 장관과 다른 직책에서 사임하게 했다고 비난한다. 2025년 중간선거와 2028년 대선으로 친미 마르코스 가문과 친중 두테르테 파벌 간의 분열이 심화할 수 있으며, 이는 대만의 정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외교 정책의 정렬을 깨뜨릴 수 있다.
일본 역시 2025년에 격동을 겪을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의회 다수당을 잃은 연립 정부를 이끌고 있으며, 10년 만에 최악의 선거 결과를 기록했다. 이시바 내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50.7%였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에 36.5%로 떨어졌다. 야당은 이시바 총리의 의제를 차단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정부 마비 가능성이 높다. 오는 3월 예산 심의에서 이시바 내각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실시될 공산도 크다. 일본의 내부 갈등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과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로 안정과 응집력이 요구될 때 중요한 개혁을 지연시키고 지역적 리더십 역할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각각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은 미국의 정책 재조정으로 인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4자 안보 대화(쿼드), 한·미·일 3자 협력 등의 이니셔티브를 바탕으로 지역 동맹과 파트너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추구하는 거래적 접근 방식의 복귀는 이 같은 이익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 아마 2025년의 가장 큰 블랙스완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권력 지형도가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일련의 혼란일 수 있다.
한국, 대만, 필리핀, 일본의 상황은 글로벌 상호의존 시대에 국내 불안정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안보는 군사 동맹뿐만 아니라 내부 제도의 회복력에도 달려있다. 이러한 내부 균열을 해결하지 않으면 동아시아는 외부 역학 관계에 더욱 취약해지고 가장 시급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하오난 중국 공공외교 정책 싱크탱크 차하얼학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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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With South Korea in crisis, what black swans lurk for East Asia in 2025?’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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