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악재에 악재가 겹치며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월초 1400원 부근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 새 70원(약 5%) 가까이 급등했다. 국책연구기관마저도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으로 올해 마지막 장에서 환율 상승폭은 제한됐지만 여전히 1470원대의 높은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1일 새벽 2시 종가가 1472.3원이었다.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1467.5원 대비 4.8원 상승한 수치다. 외환당국의 미세조정과 수출업체의 월말 네고 유입이 환율 상승폭을 제한한 것으로 해석된다.
환율은 지난달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지속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2일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403.50원을 기록한 뒤 1390원대로 복귀하며 안정되는 듯했지만 지난 2일(1401.30원) 다시 1400원대로 돌아왔다.
이후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가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우며 환율 오름세에 기름을 부었다. 3일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442원까지 치솟았다. 여섯 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해제되면서 환율은 1410~1420원대에 움직였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안 1차 표결이 무산되면서 9일 또다시 1430원대를 기록했다. 지난 19일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하 신중론을 시사하자 1450원대까지 올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탄핵이 가결된 27일에는 1480원대까지 상승했다. 외환 당국이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규모를 확대하는 등 시장 안정화에 힘쓰고 있지만 환율은 여전히 1470원대의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원화 가치는 이달 들어 주요 통화들보다 더 크게 절하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27일까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달러 대비 원화 가치 절하율은 4.96%로 호주달러화(4.32%), 일본 엔화(4.03%), 유로화(1.24%), 인도 루피화(0.92%), 대만 위안화(0.70%) 등 주요국 통화보다 높았다.
탄핵 정국 장기화 우려로 내년에도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국 불안 장기화 우려로 환율의 추가 상승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며 "대내외 각종 악재로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의 시장 개입도 강화될 것으로 보여 변동성 확대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일시적인 국정 공백이 아닌 탄핵 국면 장기화 가능성은 환율에 꾸준한 상방 압력을 가할 재료"라며 "다만 당국 개입 물량, 급격한 환율 상승에 대한 투자자의 상단 경계감은 상단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 또한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DI는 "3~4%의 환율 변동은 통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바, 원·달러 환율의 1500원 도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한국은 자율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지금처럼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경우 기업 활동 위축을 막을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KIEP)은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환율 상승)할 경우 대규모 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산했다. 환율 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보다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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