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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가족 돌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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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가족 돌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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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아버지를 돌보는 12살 정우,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와 고령의 할머니를 간병해온 우정 씨…. [간병에 갇힌 청춘] 기획을 진행하며 만난 청년들은 간병에 내몰려 학업과 취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현재 정부가 청년미래센터를 통해 13~34세 가족돌봄 청년에게 자기돌봄비·돌봄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더욱 섬세하고 폭넓은 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자립을 도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취재를 하며 알게 된 것은 돌봄이 나이와 관계없다는 사실이다. 가족돌봄 관련 지원단체와 연구자들은 정부의 가족돌봄자 지원 정책이 사실상 청년에게만 집중돼 있어 가족을 돌보는 중·노년들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중년층은 부모를 봉양하고 간병하는 동시에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이른바 '낀 세대'다. 중년들이 부모·자녀에 대한 이중 과업을 수행하느라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하면, 이들이 노년이 됐을 때 노인 빈곤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돌봄 부담을 겪으며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45~64세 중년이 8명 중 1명(12.5%)에 달했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도 흔해졌다.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아픈 배우자나 부모를 돌보게 되면 돌봄자의 건강도 함께 노쇠해지기 쉽다. 이미 은퇴를 마친 노년에게 간병비 부담은 생계 위협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돌봄은 모든 사람에게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이다. 일찍부터 가족돌봄 정책을 펼쳐온 호주, 노르웨이 등에서는 간병을 필요로 하는 가족을 돌보는 이들을 '가족보호자'라고 부른다. 연령과 관계없이 전반적인 돌봄자 지원 정책을 펼치되, 자립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청년에겐 교육 기회를 추가 지원하는 식으로 맞춤형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장기요양제도 등 기존 사회복지체계가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데 역부족이란 사실은 이미 여러번 지적받아왔다. 지난달에는 전신마비인 형을 16년간 돌보며 생계를 책임져오다 결국 형을 살해한 40대 동생이 징역형을 받았고, 지난 10월에는 암 말기 아내를 십수년간 돌보던 7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경찰에 붙잡혔다. 가족돌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한국도 가족돌봄자 정책의 지원 대상을 전 연령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충격적인 비극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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