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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르포] 아세안 "반도체·AI는 국가 주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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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르포] 아세안 "반도체·AI는 국가 주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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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만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아세안 3개국(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을 다시 방문했다. 지난해 빠졌던 태국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는 미·중 긴장 속에서 공급망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원대한 구상엔 꼭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12월 3일 태국에서 젠슨 황은 패통탄 총리를 만나 엔비디아의 첫 클라우드 파트너인 SIAM.AI가 주최한 태국 AI 비전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주권적(sovereign) AI’를 활용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태국의 야망을 잘 표출했다. 젠슨 황은 태국 데이터가 자국민의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엔비디아의 최첨단 DGX H200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현지화된 AI 접근 방식을 지지하고 나섰다. 즉, 자국의 독자적 AI 인프라가 없이는 국가의 주권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주권의 문제=미·중 무역 갈등의 파열음 속에 동남아시아가 조용히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주목받고 있다. 첨단 기술과 자본 집약적인 반도체 부문과 무관할 것으로 보인 아세안 지역의 부상은 흥미롭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사버린티(Sovereignty)’, 즉 ‘주권(主權)’이라는 표현이다. 우리말로 매끄럽게 ‘자주독립’ 혹은 ‘한국형 K-모델’ 로 번역될 수 있다. 오랜 식민지 경험을 한 아세안 국가들이 ‘주권’의 문제에 유달리 관심이 높은 것은 널리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주권적 AI’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자국의 AI를 위해서는 반도체와 데이터 센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나아가 젠슨 황 CEO가 인도를 비롯해 아세안 지역을 잇달아 방문한 행보 자체는 반도체 및 AI 공급망에서 아세안 국가들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의미. 하지만 실제로 아세안 지역이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반도체 산업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산업은 급속하게 안보 상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반도체 및 AI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칩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면서 기업들이 제조 기반을 다각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오랫동안 칩 제조의 중심지였던 대만은 중국과의 충돌 때를 계산해 공급망 전략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떠오른 대안이 아세안 지역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전략적으로 위치한 아세안 국가들은 물류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 시장이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첨단 산업에 투자하기에 이상적이다. 일찌감치 외국인 직접 투자(FDI)에 열린 자세를 지닌 아세안은 반도체 생태계의 새로운 파트너로 급부상했다.


[아시아르포] 아세안 "반도체·AI는 국가 주권의 문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3일 태국에서 패통탄 총리(오른쪽)를 만나 태국 AI비전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다.

◆변화하는 지정학적 지형도=우선 엔비디아의 최우선 구애 대상은 베트남이다. 미국과 관련 기업들이 중국 공급망에서 분리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아세안, 특히 베트남은 투자의 물결의 혜택을 받는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을 완화하려는 기업들에 힘입어 지난 3년간 아세안의 전자, AI, 반도체 부문의 외국인 직접 투자가 급증했다.


12월 10일 하노이를 방문한 젠슨 황은 팜민찐 총리에게 AI 연구개발(R&D) 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 센터는 베트남을 엔비디아의 글로벌 전략에서 중요한 노드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비엣텔과 FPT와 같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갖는데, 군 소유의 통신 회사인 비엣텔은 AI 연구에 집중하고 FPT는 127대의 엔비디아의 HGX H100 서버 유닛을 받아 AI 애플리케이션(앱) 현지화에 나선다. 전자산업 초보자로 불리는 베트남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도 빠르다. 미국으로 수입된 베트남의 반도체 금액은 2023년 2월 기준 약 5억6000만달러로, 이는 불과 2022년 2월의 약 3억2000만달러에서 75%가량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높은 관심과 투자에도 아세안이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엔지니어링 및 R&D 기반이 문제다. 반도체 제조와 AI 개발은 고도의 숙련된 노동력, 첨단 인프라, 강력한 공급업체 및 파트너 생태계를 요구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제외하곤 대개 공학 기술이 취약하다.


이지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실장은 “아세안 각국의 공학 교육의 수준이 해외 투자 업체들의 눈높이를 충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베트남 기술분석가 호앙 민 박사는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은 반도체 팹 건설에 대한 야망을 갖고 있지만 기반 구축이 먼저"라고 말한다. 교육, 기술 훈련, 인프라에 대한 선투자 없이 중진국 레벨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 고민은 아세안 블록의 분열된 성격에 있다. 앞서 말한 ‘주권적 AI’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단 하나의 시장으로 운영되는 중국과 달리 아세안은 경제 발전 수준, 규제 환경, 산업 정책이 다양한 10개 회원국이 각개 약진한다. 크기도 고만고만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언어와 종교 경제생태계도 전혀 다르다.


협력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싱가포르는 안정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이라는 명성을 활용해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와 같은 거대 반도체 및 AI 기업을 유치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실리콘과 희토류 원소와 같은 원자재 생산을 포함한 반도체 공급망의 상류 부문에서 기회를 모색 중이다. 태국과 필리핀과 같은 나라도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투자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이런 강점을 씨줄과 날줄처럼 활용하고 협력해야 한다. 아세안경제공동체(AEC)와 포괄적 및 진보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이니셔티브는 반도체 및 AI 분야에서 더 깊은 협력을 위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교육, R&D, 인프라에 대한 공동 투자는 이 지역이 글로벌 규모에서 경쟁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제공할 것이다. 아세안의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대만 정도가 꼽힌다. 대만이 아세안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한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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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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