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근무, 복제 개선 꿈꾼 황아연 순경
'제화' 중심으로 경찰 장비 품질개선에 힘써
"경찰이 되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거니까…그 매력에 10년 동안 하던 연기도 그만두게 됐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에서 만난 미래치안정책국 장비계 장비운영과의 4년 차 막내 황아연 순경(27)은 경찰이 된 이유를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황 순경은 10년간 해왔던 연기의 길이 아닌, 어릴 적 꿈꾸던 경찰의 길을 택했다. 경찰은 누군가를 대가 없이 도울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이유에서다.
황 순경은 "항상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다"며 "경찰이 되고 나니 타인을 도와줄 수 있고, 도와줘도 되는 명분이 생겨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도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분을 도와드렸는데, 거리낌 없이 나서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변화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보람을 느꼈다"며 미소 지었다.
2021년 4월 경찰에 입직한 황 순경은 서울 송파구의 파출소에서 근무한 뒤 경찰청 장비계에 직접 지원해 2년째 현장 경찰관이 필요로 하는 장비들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파출소에 있다 보면 경찰관 복제에 대한 불만을 많이 얘기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한번 직접 개선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지원하게 됐다"며 "현장의 고충을 알고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경찰의 발을 위해 모두 꺼리는 '신발맨' 자처하는 노력파
황 순경이 속한 장비운영과는 경찰관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제복, 제화부터 안전과도 직결된 화재 대피 마스크, 야간 투시경 등 140여개의 물품을 구매 및 보급한다. 황 순경은 제화, 혁대, 안전 헬멧 등 약 25개 종류를 담당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황 순경이 담당한 신발의 경우 현장 특성에 맞게끔 16종에 달하는 종류로 준비돼 있지만, 요구사항이나 불만은 끊이지 않아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직업 특성상 수많은 현장을 돌아다니고 뛰어다니다 보면, 모두가 만족하는 '편함'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 황 순경은 이런 신발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업체와 긴밀히 협력하고, 제조과정도 직접 공부하며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경찰 조직 내에서 자칭·타칭 ‘신발맨‘으로 불릴 정도로 제화에 진심이다.
황 순경은 "구조적 특성상 조달 방식에 따라 매년 신발을 담당하는 업체가 변경될 수밖에 없는데, 신골(신발 틀)도 사람의 발도 모두 제각각이다 보니 매번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며 "가장 많이 뛰어다니는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장에도 여러 번 방문하고 소통하며 관련 공부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제화 쪽은 워낙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2년 연속으로 담당했던 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기록을 달성하게 됐다"며 "내년에도 맡을 예정이라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하니, 칭찬과 기대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최근 경찰 내부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신발이 편하고 좋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황 순경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올 때면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다"며 웃어 보였다.
치열한 연구와 고민 끝에 올해 다양한 성과 내기도
경찰청 6층 복도에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33개국의 경찰 복제가 줄지어 있다. 황 순경이 경찰 창설 80주년을 맞아 내년에 교체될 ‘경찰 복제'를 위해 모두 직접 공수해 온 것이다. 하나하나 비교하고 분석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경찰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품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황 순경은 "내근도 외근도 소재는 조금 다르지만 큰 차이가 없는 옷을 입다 보니 현장에서는 불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특히 여름에도 겨울과 동일한 소재의 옷을 입어야 해 무척 더운 상황인데, 앞으로는 더욱 장기간에 걸쳐 더위를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적절하게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장비운영과에서는 지난여름 '혹서기 근무복'도 새롭게 개발했다. 시범 운영 결과 현장 경찰들에게서 "드디어 개선됐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황 순경은 "단순히 물품을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장 경찰관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품목이나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무 중 장비나 복제가 훼손된 경찰관들에게 무상으로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아너 박스(Honor Box)' 제도도 올해 장비운영과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황 순경은 "지난 2월 도입됐는데 현재까지 400건 이상의 지원 사례를 기록했다"며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경찰관들의 희생에 감사와 보상을 전하다 보니 그 의미가 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장비운영과에서는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물품들을 관리하며, 경찰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 순경은 "경찰관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단순히 도구를 넘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필수 요소"라며 "더 나은 품질과 신뢰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해서 개선하고 있다"고 전했다.
따뜻한 마음과 특기 살린 책임감 있는 경찰
황 순경은 경찰의 역할을 '귀 기울이고 살피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질서유지가 필요한데, 무언가를 막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경찰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경찰은 시민들과 가장 가까이에 서 있기 때문에 조금만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고, 또 귀 기울이고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대학을 다니며 쌓은 연기 전공 경험도 경찰 업무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황 순경은 "연기를 하며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며 "이 경험이 민원인과의 소통이나 팀원들과의 협업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발표나 소통에 능숙하다 보니 경찰청 내 '똑순이'로 소문난 황 순경은 각종 행사의 사회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황 순경의 목표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현장 경찰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국민들이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출동하게 되면 현장에서 경찰이나 소방관, 의사들을 다 만나게 되는데, 밖에만 밤이고 저희한테는 사실 낮이나 다름없다"며 "시보가 끝나고 느꼈던 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은 사실 본인의 생명을 더 깎아가면서 일한다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시민분들이랑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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