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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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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프랑스 '도멘 바롱 드 로칠드 라피트(Domaine Barons de Rothschild Lafite)'

1868년 로칠드 가문 인수 이후 6대 걸친 가족 경영
보르도 '5대 샤토' 중에서도 돋보이는 품격
앙세이앙, 100년 만에 선보인 라피트의 선물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사람들은 라피트의 포도나무 위치가 메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고, 결국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본 것을 사랑합니다."


1868년 9월 유대계 금융 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프랑스 지부를 설립한 제임스 드 로칠드(Baron James Mayer de Rothschild) 남작은 파리를 떠나 보르도로 향한다. 일흔여섯의 노구를 이끌고 떠나는 먼 길이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들떠있었다. 한 달 전 매입한 보르도 메독의 와이너리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와 증기선을 갈아타며 달려간 그곳의 라피트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매료됐고, 자신이 본 것을 사랑한다고 썼다. 고대하던 라피트와의 첫 만남 이후 석 달이 지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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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칠드, 보르도의 보물 '라피트'를 손에 쥐다

제임스가 인수한 이후 샤토 라피트의 이름 뒤에는 그의 성(姓)인 로칠드가 붙었고,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가 되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갈망했던 라피트는 그가 매입하기 이전부터 이미 프랑스 전역에 높은 명성을 자랑하던 와이너리였다. 라피트는 프랑스 남부 가스코뉴 지방 방언으로 작은 언덕을 뜻하는 '라 하이트(la hit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이곳에선 1234년부터 포도밭이 형성돼 와인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피트의 와인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8세기 초 당시 소유주였던 세귀르 가문의 니콜라 알렉상드르 후작이 와인 제조 기술을 끌어올리면서부터다. 라피트의 와인은 루이 15세의 식탁에 자주 오르며 '왕의 와인'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상류사회에 소개되며 국제적인 명성도 지니게 됐다. 대표적인 해외 고객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다. 와인 애호가였던 제퍼슨은 1784년 샤토 라피트를 직접 방문해 와인을 구매해 가는 등 평생을 라피트의 고객으로 지냈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제임스 드 로칠드(Baron James Mayer de Rothschild) 남작(왼쪽)과 '도멘 바롱 드 로칠드 라피트(Domains Barons de Rothschild Lafite)'의 문장.

오래전부터 높은 평판을 이어오던 라피트였지만 현재의 절대적인 지위를 확립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1855년 구축된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 체계다. 공식적으로 '그랑 크뤼 클라쎄 엉 1855(Grand Cru Classe en 1855)'이라고 불리는 이 등급체계는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의 후원하에 개최된 파리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황제는 박람회에서 프랑스 와인을 홍보하기 위해 보르도 최고 생산지인 메독 지역 와인의 등급을 분류해달라고 요청했고,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품질과 명성, 판매 가격과 기록 등을 바탕으로 수많은 와이너리 가운데 61개 샤토를 추려 1등급에서 5등급까지 5개 그랑 크뤼 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때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비롯해 4개 와이너리가 1등급에 포함됐고, 이후 1973년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된 것 외에는 170년간 등급에는 변동이 없다. 와인을 5개 등급으로 분류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는데, 숫자를 통해 직관적으로 제시한 기준은 보르도 와인의 국제적인 인지도와 유명세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


물론, 1855년에 만들어진 등급 체계가 현재의 와인 품질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등급 체계는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고, 라피트를 포함한 5개 와이너리는 지금까지 '5대 샤토'로 불리며 보르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굳건한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전경.
"1등 중의 1등" 라피트…보르도의 자부심 '우뚝'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나폴레옹 3세가 '1등 중의 1등(Premier des Premiers)'이라고 칭했을 정도로 1등급 샤토 중에서도 가장 품격 있는 와이너리로 꼽힌다. 라피트를 표현하는 최적의 단어로는 '균형'을 꼽을 수 있다.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와인, 강렬하면서도 세련미와 신선함을 잃지 않는 와인, 이러한 절묘한 균형은 우아함으로 귀결돼 수 세기 동안 보르도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라피트 스스로도 자신들의 와인을 두고 "라피트는 변함없이 강인하면서도 섬세하고 미묘하다"고 표현하며 매년 다른 모습을 보이는 변덕스러운 자연 속에서도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오늘의 섬세함과 미묘함을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보르도 메독 지역 중에서도 포이약(Pauillac) 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이약은 지롱드강 왼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고, 보르도시(市)에선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강어귀의 온화함과 피레네에서 유래한 다양한 토양 덕분에 포이약은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데 탁월한 기후와 지질 조건을 자랑한다.


라피트의 포도밭은 배수가 잘되고 최적의 일조량을 자랑한다. 점토질 자갈 토양은 뛰어난 수분 조절 능력을 갖췄고, 주력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에 최적의 숙성 조건을 제공한다. 카베르네 소비뇽 외에도 메를로(Merlot),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등이 재배돼 균형 잡힌 블렌딩에 기여한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그랑 뱅 샤토 라피트 로칠드(Grand Vin Chateau Lafite Rothschild)'

라피트의 와인은 극도로 정밀한 양조를 거친다. 최고 와인인 '그랑 뱅 샤토 라피트 로칠드(Grand Vin Chateau Lafite Rothschild)'는 1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하며, 재배된 구획의 특성과 성숙도에 따라 오크와 스테인리스 스틸, 콘크리트 통으로 포도를 구분해 양조한다. 포도는 약 3주에 걸쳐 침용을 진행하고, 발효는 18도(°C)의 온도에서 15일간 진행된다. 이렇게 양조한 1차 와인 가운데 양질의 와인만 선별해 블렌딩을 진행하고, 이후 새 프렌치 오크통에서 15개월 동안 숙성을 거쳐 최종 완성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 라피트의 최상위에 있는 핵심 와이너리이자 와인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라피트에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칠드 가문은 보르도 최고 와이너리라는 명성에 걸맞은 고급 와인의 의미를 계승하기 위해 라피트 컬렉션(DBR Lafite Collection)을 만들어 와이너리와 와인을 확장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일종의 지주회사인 '도멘 바롱 드 로칠드 라피트(Domains Barons de Rothschild Lafite, DBR)'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도멘 바롱 드 로칠드 라피트(Domains Barons de Rothschild Lafite, DBR)'의 와이너리.

DBR은 현재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비롯해 총 10개의 와이너리를 산하에 두고 운영하고 있다. 첫 신호탄은 1962년 같은 포이약 지역의 '샤토 뒤아르 밀롱(Chateau Duhart-Milon)' 인수였다. 이후 1984년 소테른 그랑 크뤼 1등급인 '샤또 리외섹(Chateau Rieussec)'과 앙트르 드 메르의 '샤토 파라디 카세이유(Chateau Paradis Casseuil)', 1990년 포므롤의 '샤토 레방질(Chateau L'Evangile)', 1999년에는 랑그독의 '도멘 도시에르(Domaine d`Aussieres)' 등을 연달아 그룹사 품에 끌어안았다.


이후 해외로 눈을 돌려 칠레 콜차구아 밸리의 '비냐 로스 바스코스(Vina Los Vascos)',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보데가스 카로(Bodegas Caro)', 중국 '도멘 롱다이(Domaine de Long Dai)'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최근에는 부르고뉴 샤블리의 명가 '윌리엄 페브르(Domaine William Fevre)'까지 품으며 자타공인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 생산자임을 분명히 했다.

앙세이앙, 라피트가 선보인 100년 만의 신상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앙세이앙 뒤 샤토 라피트 로칠드(Anseillan du Chateau Lafite Rothschild)'

로칠드 가문은 1868년 라피트를 인수한 이후 6대에 걸쳐 와인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사스키아 드 로칠드(Saskia de Rothschild)가 2018년부터 아버지를 이어 6대 소유주로서 와이너리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사스키아가 와이너리 경영을 맡은 이후 DBR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앙세이앙 뒤 샤토 라피트 로칠드(Anseillan du Chateau Lafite Rothschild)', 일명 '앙세이앙'의 출시가 대표적이다. 앙세이앙은 메인 와인인 그랑 뱅 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세컨드 와인인 '카뤼아드 드 라피트(Carruades de Lafite)' 두 종의 와인만 선보이던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 100년 만에 새로 선보인 와인이다. 앙세이앙의 첫 번째 빈티지인 2018년은 로칠드 가족이 라피트를 인수한 지 1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의 와인 숙성고 전경.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높은 명성만큼이나 높은 가격이 책정돼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앙세이앙은 라피트의 우아한 캐릭터는 살리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목표로 선보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세 번째 와인이다. 앙세이앙은 라피트의 양조기술과 자원을 활용해 라피트와 포이약의 캐릭터를 좀 더 직관적이고 심플하게 담았다. 앙세이앙의 포도밭은 그랑 뱅에 사용되는 포도밭보다 점토질 비율이 높은 토양으로, 와인 역시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인 그랑 뱅과 다르게 점토질 토양에서 잘 자라는 메를로가 중심이 된다. 2020 빈티지 기준 메를로가 63%, 카베르네 소비뇽이 37% 블렌딩됐다. DBR의 브랜드 앰버서더인 김성국 소믈리에는 "앙세이앙은 라피트의 또 다른 자아이며, 라피트를 좀 더 명료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한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라인업 확대 외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사스키아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모든 밭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DBR의 와인은 모두 '비콥(B-Corp, Benefit Corporation)' 인증을 획득했다. 비콥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비랩(B Lab)'이 이익 추구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글로벌 인증 제도다. 비콥 인증은 환경과 직원, 고객, 지역사회, 지배구조 등 5가지 영역에서 기업의 성과를 평가한다. 단순한 재무적 성과나 일회성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착한 기업을 판단하는 새로운 척도가 되고 있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의 지하셀러.

김성국 소믈리에는 "2018년 이전만 하더라도 라피트의 포도나무는 모두 같은 모양, 같은 수의 포도송이로 관리할 정도로 무섭도록 정갈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사스키아가 오너를 맡으면서 포도밭의 모습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김 소믈리에는 "지금은 포도밭에 야생화와 잡초 등 자연을 있는 그대로 유지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이러한 철학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 외에도 DBR의 모든 와이너리에 공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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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를 넘어 프랑스와 세계 전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DBR은 세계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재배와 양조 관행을 시대에 맞게 재검토하고 적응시켜 자신들의 정체성인 우아한 균형을 유지해간다는 방침이다. 이는 자신들이 일궈낸 궁극의 균형이 100년이 넘는 변덕스러운 계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수용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끝에 힘겹게 얻어낸 결과물임을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경와인셀라]보르도의 보물 '라피트'…시간을 초월한 궁극의 '균형'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의 포도밭 전경.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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