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로 일본 안팎 인지도
아이돌·배우 아우르는 톱스타로
한일 합작 작품도 다수 출연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설산을 바라보며 안부를 애타게 외치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대사, 바로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입니다. 이 러브레터 주인공 나카미야 미호 사망 소식으로 열도는 슬픔에 빠진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표한 팬들이 많았는데요. 오늘은 나카야마 미호의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나카야마는 1970년 3월 1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는데요. 프로필상에는 도쿄 출생으로 돼 있지만 3살 때 어머니가 이혼한 뒤 여동생을 데리고 도쿄로 상경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어릴 적 배가 고파 부엌의 설탕을 퍼먹었던 일화 등을 소개하곤 했는데요. 초등학교 4학년때 어머니가 재혼하는데, 새아버지도 가수를 목표로 도쿄로 상경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영향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나카야마는 연예인을 동경하기 시작했다는데요, 'TV에 나갈 수 있고, 주목도 받고, 남 앞에 서면 호응도 받는다'라는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해 극단이나 영화 오디션을 계속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때 스카우트되죠.
당시 새아버지는 여전히 가수 데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네가 먼저 연예계로 데뷔하는 거냐"며 놀랐다는 일화는 팬들에게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주변 누구도 그래서 연예계 입성을 말리지 않았다고 해요. 이후 잡지 모델로 데뷔해 여러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아이돌로 데뷔해서도 크게 활약합니다. 시세이도 캠페인 모델로 기용돼 부른 CM송 'rose color'는 오리콘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영화 주제가가 된 'Virgin eyes'로 홍백가합전에 출전하기도 했죠. 1980년대 싱글 총매출은 당시 여성 아이돌 중 5위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일본 시티팝의 정수로 꼽히는 나카모리 아키나, 마츠다 세이코와 견줄 정도의 톱 아이돌로 활동합니다.
원래 1990년대부터는 당시 아이돌들은 영화배우로 돌아서는 분위기였지만, 나카야마는 연기를 하면서도 가수 활동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카야마는 전주만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요. "원하는 좋은 사람 나타날 때까지~"의 후렴구로 유명한 가수 더넛츠 '사랑의 바보'의 원곡, "세상 그 누구보다 분명(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을 록 밴드 WANDS와 함께 불렀습니다. 밀리언 셀러로 우리나라에도 번안곡으로 알려지게 되죠.
그리고 1995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 주연을 맡게 되는데요. 나카야마는 영화에서 '히로코'와 '이츠키' 2역을 동시에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요. 설원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모습에 작품의 배경이 된 홋카이도는 사람들이 꼭 들려야 할 여행지가 됐죠. 2000년대에는 계속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으며 평균 시청률 20%를 보장하는 유일한 여배우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몰아갑니다.
그러다가 2002년 6월 돌연 뮤지션이자 소설가인 츠지 히토나리씨와 결혼을 발표하는데요. 츠지 히토나리씨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개봉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원작자입니다. 우리나라 공지영 작가와 공동 집필한 소설이죠. 그리고 결혼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생활하다가 2004년 아들을 낳습니다. 잡지에서 에세이를 연재하며 또 한 번 여러 사람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죠.
남편과 마찬가지로 본인도 한일합작 작품을 꽤 했는데요. 2010년 발매한 영화 '안녕, 언젠가(사요나라 이츠카)'의 주연을 맡게 되는데, 이 작품은 남편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를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재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로 각색해내죠. 그래도 연예계 활동은 상당히 뜸했는데, 대신에 작사나 소설 집필 등에 매진하게 됩니다.
연예계 복귀는 2014년 협의이혼 이후인데요. 2018년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나비잠'에 배우 이재욱과 함께 출연해 얼굴을 알리는 등 다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복귀 후 첫 작품에 주연을 맡았을 때는 기자회견에서 "데뷔 때부터 언제나 기세로 임했다. 남들이 나를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이렇게 와버렸다"며 "새로운 도전에는 언제나 학생 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올해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위해 준비를 하던 시점에 비보가 전해진 것인데요. 전날 오후 11시에 소속사 관계자와 연락을 나눈 뒤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시간에 연락이 되지 않아 자택을 방문하니 나카야마가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소속사에서는 "입욕 중에 발생한 불의의 사고"라고 발표했습니다. 부검 결과 사고 등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날도 오사카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충격은 더욱 컸는데요. NHK 등 주요 언론도 일제히 이 소식을 타전했습니다.
그리고 전 배우자인 츠지씨의 소식도 주목을 받았는데요. 츠지씨는 자신이 편집장을 맡는 웹 매거진 '디자인 스토리즈'에서 현재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프랑스에서 먹고 사는 일을 기록한 '프랑스 밥 일기'를 매일 연재하고 있는데, 하루 건너뛰고 그다음 날 투고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불의의 슬픈 소식이 있어 어제는 일기를 쉬고 하루를 기도하는 데 썼다"며 "아들이 걱정돼 어제는 계속 아들과 함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들과 함께 프랑스식 오징어볶음으로 밥을 차려 먹었는데, 아들이 밥을 다 먹고 나카미야씨가 언제나 "아들, 힘든 날에는 그냥 마구마구 볶아서 우걱우걱 먹으면 돼"라고 했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해요. 츠지씨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겠다. 여러 가지 일이 있어도 인생은 계속된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는데요.
고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전히 며칠 전의 게시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팬들의 추모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등 많은 작품으로 감동을 줬던 만큼 쉽게 잊히지 않을 배우일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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