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상상의 고고학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두바이와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가장 큰 차이는무엇일까. 역사, 지역, 음식, 날씨 등 여러 차이점이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어쩌면 두 도시들의 지형학적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높은 건물들로 가득한, 완벽하게 계획된 도시다. 반대로 수 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로마의 길은 좁고, 복잡하고, 비논리적이다. 아니, 사실 로마는 하나의 도시가 아닌, 지난 수 천년 동안 같은 장소에 지어지고, 다시 부서지고, 또 다시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만들어진 여러 도시들의 집합체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만들어진다 해도 예전 도시의 모든 도로와 건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있는 것을 부수는 것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예전 건물과 도로를 흙과 돌로 덮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짓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이 같은 자리에 세워진 건물들에 파묻혀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의 도시와 과거의 도시가 함께 존재하고 있기에, 로마에서의 공간적 이동은 언제나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계획된 두바이, 복잡하고 비논리적인 로마
그렇다면 이제 흥미로운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인간의 뇌는 과연 두바이일까, 아니면 로마일까. 뇌는 기획되거나 설계되지 않았다. 우연과 필연의 협업이었을까. 수 억년 전 외부 세상에서의 변화에 반응하는 새로운 세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경세포들이었다. 초기 신경세포들은 단순했다. 빛이 밝아지거나, 먹잇감이 가까이에 있으면 반응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반응만으로는 부족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특화된 운동신경세포들이 등장했고, 덕분에 생명체들은 원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가거나, 위험요소들로부터도망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반응만 한다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기억, 학습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 역시 필요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과정을 통해 지난 수 억년동안 지구 생명체들은 점점 더 복잡하고 발전된 신경계와 뇌를 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는 그 어느 동물들보다 더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화과정은 마치 하늘에서 날고 있는 비행기 엔진을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나. 착륙 후 깔끔하게 수리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없고, 엔진을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다.
덕분에 진화 과정의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같은 기능을 가진 신경회로망이 여러 곳에 존재하고, 동일한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여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과거에 사용되었던 뇌구조와 연결고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업그레이드된 신경구조와 함께 여전히 작동하기까지 한다. 영장류인 호모 사피엔스 뇌에는 덕분에 포유류의 뇌, 조류의뇌, 그리고 파충류와 물고기의 뇌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효율적 진화의 결과, 인공지능과의 차이
세상은 하나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여러가지의 뇌를 가진 우리. 고칼로리 음식을 보는 순간 과거의 뇌들은 당장 먹을 것을 명령하지만, 현재의 뇌는 다이어트 걱정을 한다.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방인을 만나면 21세기 뇌는 다양성과 세계화를 추구하지만, 과거의 뇌는 차별과 전멸을 선택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과 희망 역시 비슷하다.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던 과거의 뇌에게 미래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보다는 과거, 그리고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문자와 문명을 가지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현재는 상상한 미래와 기억된 과거의 연결고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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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효율성과 목적성을 기반으로설계된, 마치 두바이같은 인공지능과는 달리, 형편없고 대책 없는 로마와도 같은 지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 로마와 두바이의 차이.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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