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음악학원을 최근 접었다. 한때 학원생이 40~50명에 이르렀지만, 최근 1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학원생 대부분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는데, 학생 수가 줄면서 자연스레 음악학원을 찾는 발걸음도 적어졌다. 상가 임차료와 전기요금, 학원차량 유지비 등을 빼면 수중에 남는 돈은 몇십만 원에 불과했다. 폐업을 결정하고 8대의 피아노를 무상으로 처분했다. 피아노가 낡기도 했지만, 헐값에라도 팔려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의 폐업 지원금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미 올해 지원금 예산이 바닥났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어렵다 어렵다 말은 들었지만 문을 닫는 가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내수가 어렵다. 올해 내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와 건설업 종사자 등 서민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빠졌다. 올해 2분기 외식업체 폐업률은 4.2%로, 코로나19 당시였던 2020년 1분기(4.4%)에 육박한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처리된 법인 파산 선고는 138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7%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살아난 수출의 온기가 올해 하반기에는 내수에도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빗나갔다. 1997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처럼 경제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 없었지만, 한국 경제의 체력을 서서히 고갈되는 듯한 모습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모두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낮췄다. 내년 전망치는 2.0%로 제시했다. 당초 전망치 2.2%에서 0.2%포인트 내린 수치다. 잠재성장률과 비슷하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서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나마 올해 성장을 견인한 수출조차 내년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통상환경은 크게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주요 수출국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한국 주요 기업들이 내년 경영전략을 수립을 앞두고 비상경영을 선언하거나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선 것도 대내외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중국의 거센 도전 앞에 한국 기업들이 설 수 있는 땅은 더욱 좁아졌다.
2기 트럼프 정부의 관세·이민정책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강달러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이상기후에 따른 곡물·식품류 가격 인상까지 더해지면 안정 기미를 찾은 물가를 다시 요동치게 할 수 있다.
한국은 저출생 고령화로 위기감이 더욱 크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한국 사회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복지비용은 점점 늘어나지만 청년 인구 감소로 세원은 줄어들고 있다.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이를 ‘복합위기’라고들 한다. 정부는 더욱 복잡해지고 입체적으로 바뀐 경제상황 앞에서 쾌도난마 같은 정책을 내놓기 어려워졌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를 가져오고, 정부가 재정을 막 풀면 국가채무가 쌓여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다고 경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미세한 정책 스킬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년 예산을 집행하다가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추경은 스테로이드 주사와 같다. 만성화하면 독이지만, 필요할 때 긴요하게 처방하면 명약이 된다. 지금 당장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경제에 단호한 처방이 내려져야 할 시기가 닥칠 수 있다.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 수립에 앞서 비상한 각오를 다지길 바란다.
조영주 세종중부취재본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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