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계속 지지부진하던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꿈틀대고 있다. 지난 1일 정식 출시한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 앤 리버티(TL)’가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조심스럽게 목표주가를 올려잡고 있는 분위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서도 엔씨소프트가 주간 검색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3분기 실적은 주춤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수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1년 주당 100만원을 넘나들던 주가는 지난 8월 15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주가 부진의 원인은 기존 게임의 매출 감소와 흥행 신작의 부재 등으로 분석된다.
엔씨소프트는 모바일·온라인 게임 제작 기업이다. 주력 모바일 게임은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블레이드&소울2 등이고 온라인게임으로는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길드워2, TL 등이 있다. 원래는 리니지 IP(지식재산권)를 이용한 온라인게임이 주력 사업이었는데 2017년 리니지M을 출시하면서 모바일게임 부문이 온라인게임 비중을 넘어섰다.
올 상반기 말 기준 매출의 61%가 모바일 게임에서 발생했다. 특히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의 매출 비중이 60%에 달한다. 온라인게임 부문과 로열티, 기타 매출이 매년 비슷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들 리니지 3종의 실적이 엔씨소프트 전체 실적을 좌우하는 셈이다.
이 리니지 3종의 실적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대부분의 게임 매출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매출이 하향화되고 있다. 가장 매출 비중이 높은 리니지M은 연간 5%씩 매출이 줄고 있다. 2022년 매출액 9708억원을 기록했던 리니지W의 경우 지난해 반토막이 났고 올 상반기도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했다.
이 같은 기존 게임의 실적 감소를 받쳐주기 위해서는 대규모 흥행 신작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2021년 말 리니지W 이후 그렇다할 흥행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출시한 ‘배틀크러쉬’와 ‘호연’ 등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기존 게임 매출의 감소, 신작 흥행 부진 등의 여파는 올 3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올 3분기 컨센서스는 연결 기준 매출액 3930억원, 영업이익 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1%,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컨센서스는 지난 7일 135억원에서 약 한 주 만에 급감했다. 실적 컨센서스는 증권사들이 추정하는 실적의 평균치다. 실적 시즌이 다가오면서 점차 실적 추정치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적자를 예상한 증권사도 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3분기 엔씨소프트는 영업손실 96억원을 기록할 것”이라며 “모바일게임 매출이 리니지M 신규서버 효과로 크게 증가하지만 신작 호연, 리니지W에 대한 마케팅비 집행이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한 434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TL은 현재 진행 중…바닥 탈출할까
3분기까지는 실적 부진에 이견이 없지만 올 4분기부터는 다를 수 있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재출시한 TL이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에 최근 엔씨소프트에 대한 보고서를 낸 증권사 세 곳이 일제히 목표주가를 상향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기준 TL은 출시 첫 주에 이용자 300만명을 돌파했다. PC게임 플랫폼인 스팀에서 출시 첫날 최고 동시접속자 32만여 명을 기록한 후 매일 20만~30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 콘솔 게임의 이용자를 더하면 동시접속자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TL을 처음 출시했지만 게이머들에게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이에 엔씨소프트와 아마존게임즈는 과도한 수익모델(BM)을 배제하고 전투와 성장, 길드 등의 콘텐츠를 개선해 지난 10월 재출시했다.
김혜영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TL은 스팀 최대 동시 접속자 수가 30만명 내외로 우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라며 “출시 초반이기 때문에 향후 한 달간 이용자 수 추이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흥행이 확인될 경우 추가 밸류에이션 향상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TL의 글로벌 성공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며 “향후 TL의 동시 접속자 수가 20만명 수준으로 안정화되고 ARPPU(평균결제금액)를 50달러로 가정해도 월 50억원 이상의 로열티 매출이 반영될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TL의 성공 여부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도 나온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초기에 높은 트래픽을 보여줬던 게임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래픽이 급감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여줬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실적에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연이어 엔씨소프트에 대한 목표주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10일 골드만삭스는 엔씨소프트에 대해 투자의견을 ‘매도(Sell)’로 제시하고 목표주가를 현 주가보다 낮은 17만원으로 설정했다. 골드만삭스는 “TL이 초기 성과를 냈지만, PvP(플레이어 간 전투) 중심의 게임 콘텐츠로 이용자가 이탈할 수 있다”며 “TL이 엔씨소프트 전체 실적을 크게 개선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난 15일에는 맥쿼리증권이 엔씨소프트에 대한 투자의견을 ‘시장수익률 하회(Underperform)’로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도 17만원으로 내렸다. 맥쿼리증권은 “TL이 초기 성공을 거뒀지만 아마존게임즈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 엔씨소프트가 전세계 사용자를 대상으로 비MMO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2025년 예상 매출이 1010억원 정도인데, 이것만으로 엔씨소프트 실적 정상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TL의 이슈가 엔씨소프트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내년부터는 다수의 신작 출시도 앞두고 있어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TL을 제외하고 2개의 신작을 출시했지만 내년에는 7개의 기대 신작을 출시할 예정이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는 ‘택탄:나이츠오브더가즈’, ‘LLL’, ‘아이온2’ 등 기대 신작이 즐비하다”며 “모바일 리니지의 하향 안정화가 마무리돼 가는 가운데 내년에는 신작 효과로 인한 가파른 증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효원 기자 specialjh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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