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긴 韓, 일·생활 균형 필요" vs
"경영난 극복 위해 조직 긴장감 높여야"
'가짜노동' 줄이는 것이 시작
최근 국회에서 '주 4일제 어떻게 할 것인가'로 토론회가 열렸다. 일·가정 양립(일·생활 균형)을 위한 기업의 분위기 변화 필요성을 한창 들여다보던 때라 더 눈길이 갔다. 주 4일제가 필요하다는 쪽에선 연간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훌쩍 웃도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지적했다.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해 주 4일제를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며 삶의 질 개선 효과 역시 다수 연구에서 보고됐다는 목소리였다. 아이슬란드, 벨기에 등에서 이뤄진 주 4일제 도입 실험에서도 노동자의 일과 삶 균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기업 생산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었다는 것이다.
한국, 긴 시간 일하긴 한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724시간을 초과했다. 여론도 노동시간 단축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주 4일제 네트워크의 '직장인 1000명 노동시간 및 주 4일제 인식조사'에 따르면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은 63.2%이며 주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35~36시간으로 줄이는 덴 68.1%가 동의했다. 법정 연차휴가를 현행 '15일부터'에서 '20일부터'로 확대하는 안에 찬성하는 비율은 79.2%에 달했다.
긴 시간 일하는데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낮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49.4달러로 OECD 37개국 중 33위에 불과했다. OECD 평균(64.7달러)의 4분의 3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사용자들은 오히려 이를 주 4일제 반대의 근거로 내놓는다. 낮은 노동 생산성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연공과 근로시간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 임금 체계로는 실제 근로시간 단축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주 4일제 논의가 한창인 와중에 다른 한편에선 사실상 주 6일제가 부활하는 등 노동시간이 되레 늘어나는 모습도 관찰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 주요 계열사는 임원 주 6일제를 비롯해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업무 강도를 높이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과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따른 경영난 극복을 위해 조직 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단 명목이다.
목적만 놓고 보면 모두 필요한 얘기다. 일에 매여있는 시간을 줄여야 정신적으로 환기가 되고 육아든 자기 계발이든 일 외의 중요한 것에 몰두할 가능성이 커진다.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긴장감 있게 일해야 한다는 얘기도 맞다. 이 간극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오래 근무하면서도 생산적이지 못한 이유를 1950년대에 등장한 '파킨슨 법칙'에서 찾았다. 일을 하는 데 정해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고정된 근무시간이 우리의 업무를 결정한단 얘기다. 근무시간이 곧 노동이라는 인식은 보여주기식 '가짜노동'을 양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무직에서 특히 발생하기 쉬운 이 가짜노동은 성과와 상관없는 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위한 일, 단지 바빠 보이기 위한 무의미한 일들을 모두 포함한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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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가짜노동을 발라내는 일은 간극을 줄이는 출발이 될 것이다. 뇌르마르크는 실제 변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가짜노동을 개방적으로 이야기하고 가짜노동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리직이 근로자에게 가짜노동이 존재하는지 질문했을 때 30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올라오진 않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것, '진짜노동'만 남기는 데 양측이 마음을 다하는 것이 시작이다. 불확실한 대외환경에서 긴장감 있게 일에 몰두하는 것과 일·생활 균형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다양한 근로 방식을 도입하는 건 서로 다퉈 하나를 버려야 하는 일이 아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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