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美약속 믿고 핵 포기
미사일 러시아 본토 공격도 금지
핵무기 없는 나라 유무형 불이익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은 한국에 불편한 진실을 전한다. ‘미국의 핵우산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진실 말이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할 당시 우크라이나는 1800여 소련제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라는 미국 등의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결과는 지금과 같은 전쟁의 참화와 영토 상실이다. 우크라이나 사례는 ‘핵보유국으로부터 자국을 지켜주는 것은 자국의 핵무기뿐’이라는 점을 웅변한다. ‘핵우산은 핵 보유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핵우산의 허상은 러·우전의 여러 정황에서 확인된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큰 피해를 봤다. 군인·민간인 수십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인구는 국외 이탈로 800만명이나 줄었다. 국토의 18%는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국가 경제는 마이너스 수십% 후퇴했다.
러시아는 미사일과 항공 폭탄, 집속탄을 우크라이나의 대도시와 산업기반시설, 군대에 퍼부었다. 우크라이나 처지에서 피해를 줄이려면 이 미사일과 항공기가 날아오르는 러시아 내륙의 기지와 시설을 공략해야 한다. 수도 키이우를 얻어맞았다면 모스크바를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와 미사일을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이를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는 것을 막아왔다. 우크라이나의 손발을 묶은 격이다. 미국은 왜 이러는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핵 공격→ 미국(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러시아 핵 공격 (핵우산 제공)→러시아의 미국(NATO) 핵 공격’이라는 연쇄작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르면서 우크라이나에 핵우산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애려 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본토 공격에 미국산 전투기·미사일 사용 금지’라는 우크라이나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전쟁 규칙을 만든 것이다. 핵무기가 없는 나라에 유무형의 불이익을 강요하는 이러한 상황이 핵우산의 실체인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했다. 미국의 핵우산이 튼튼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언엔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 의무가 이례적으로 포함됐다. “미국이 실질적인 것을 주지 않고 한국의 핵무장 자율권을 억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비판도 많다. 이 선언 후 핵연료재처리, 핵 잠수함 건조 논의도 사라졌다. 되려 미국은 한국형 원전 수출의 방해꾼 노릇을 해왔다.
6월 체결된 북한·러시아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4조는 ‘한쪽이 전쟁상태에 처하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남북한 교전 시 러시아 참전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대만 간 충돌이 발발하면 이 역시 한반도로 번질 수 있다. 국내에서 금기시되는 질문이 있다. ‘한국을 위한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에 대한 러시아·중국의 핵 공격에도 적용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미국은 답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핵 비보유국은 핵보유국과의 재래식 전쟁에서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지 못한다. 적이 서울과 반도체단지와 국군 부대를 공격할 엄두를 못 내게 할 유일한 방법은 자체 핵 보유이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상실은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 핵, 중국 핵, 러시아 핵에 둘러싸인 한국에게 핵 주권은 ‘생존과 직결되는,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카드’다. 이를 위해서라면 미국에 할 말을 하든 모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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