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선수 난관 극복법
메모지 글귀 되뇌고, 혼잣말로 중얼중얼
선수마다 방법 달라도 극한 긴장 속 자기확신
스스로 믿은 젊은 국대들…金 13개 최고 기록
자신감 있는 말과 글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할 힘을 준다. 그렇게 생긴 성취감은 더 큰 목표로 나아갈 동기부여가 된다. 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 이미 달성되었다는 자기 암시로 본능을 자극한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성과를 낸 다수 선수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국내 하계올림픽 최연소(만 16세 10개월 18일) 금메달리스트가 된 사격 반효진(대구체고)은 과거 자신의 노트북 왼쪽 위에 헬로키티가 그려진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어차피 세계 짱은 나다'라는 글을 빨간 펜으로 적어놓았다. 당장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사격은 다른 종목보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정적인 자세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성적과 직결된다. 반효진은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했다. 난국을 맞닥뜨려도 메모지에 적은 글을 떠올리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지난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서 황위팅(중국)에게 0.1점 뒤져 은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에서 악몽은 재현되는 듯했다. 스물두 번째 발까지 황위팅을 1.3점 차로 앞섰으나 두 발을 남기고 갑자기 영점이 흔들렸다. 연달아 9점대(9.9점·9.6점)를 쏴 동점을 허용했다.
반효진은 코너에 몰렸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전날 확인한 운세를 곱씹으며 금세 평안함을 되찾았다. '성과가 있는 날입니다. (중략)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곳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거나 들을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 채워질 수 있는 날입니다.' 그는 한 발로 모든 걸 결정하는 슛오프에서 침착하게 10.4점을 맞췄다. 10.3점을 쏜 황위팅을 0.1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확정했다.
성공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은 매우 중요하다. 평소 자신감을 높이고, 실전에서 직면할 수 있는 변수에 대비하게 한다. 방법은 제각각이다.
이번 대회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삼성생명)은 코트에서 "쫄지 말고 자신 있게"라는 혼잣말을 몇 번씩 했다. 전문적인 훈련으로 다듬어진 루틴이다. 점수를 딸 때마다 심박수를 떨어뜨리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저는 내향형 기질인데, 경기장 안에선 많이 표출하려고 해요.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하죠. 자신 있게 해야 상대의 기가 죽고 그럴 것 같아서 혼잣말을 많이 해요. '쫄지 마', '자신 있게 하고', '할 수 있어, 너는' 등등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요."
혼잣말은 하나같이 객관화돼 있다. '나' 대신 '너'를 가리키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 직면한 문제와 거리를 두고 합리적으로 냉정을 되찾는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댄 에리얼리는 "자신에게 조언할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할 때 더 적절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탁구 신유빈(대한항공)도 비슷한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번 대회 여자 단식과 혼성 복식에서 몇 번이나 "할 수 있지? 당연하지, 난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마법 같은 주문에 힘입어 각각 4강 진출과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2020 도쿄 대회보다 일취월장한 경기력으로 2028 로스앤젤레스(LA)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신유빈은 2004년생으로 탁구 대표팀에서 가장 어리다. 하지만 에이스로 과도하게 주목받아 이번 대회 전까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부담감에 짓눌려 올 초까지 경기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부모님, 지도자, 멘탈 코치 등과 함께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찾은 해법이 혼잣말이다. '스매싱으로 점수를 따보자, 알았지?', '좋아, 오른쪽 구석을 노려볼게'와 같은 말을 우물거리며 훈련해 자신에 대한 확신을 키워갔다. 경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연속 실점한 상황에서 계속 자신에게 말을 걸어 불안감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런 훈련을 비교적 덜 받은 선수들도 있다. 사격 여자 25m 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양지인(한국체대)이 대표적인 예다. 운동선수로서 담대함을 타고났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다. 특별한 루틴도 없고, 뚜렷한 꿈과 목표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인생 좌우명이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느긋한 성격은 사격술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양지인은 사격 동작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총을 들었을 때 흔들림도 상대적으로 적다. 점수 기복이 적어 이번 대회 전부터 사격계 내부에서 금메달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양지인은 그런 시선을 마음껏 즐긴 듯하다. 그의 아버지 양재성 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파리 가기 전에 모르는 사람 전화 오면 받으라고 하더라. 메달 따서 기자들에게 전화 올 거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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