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전망치(2.6%) 대비 소폭 낮춰
수출 성장세와 달리 내수 부진 계속
"민간 소비·설비 투자 고금리 영향"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제시하며 기존 전망치(2.6%)를 소폭 하향 조정했다. 반도체를 앞세워 성장 흐름을 보이는 수출과 달리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증가세가 기존 전망에 미치지 못해서다.
고금리 장기화 영향으로 내수 부진이 계속되면서 경기 회복은 다소 지연될 전망이다. KDI는 물가가 진정된 상황인 만큼 금리를 정상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민간 소비 1.5%, 설비 투자 0.4% 증가 전망
8일 KDI는 '경제전망 수정'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내다봤다. 지난 2월 성장률을 2.1%로 제시한 뒤 5월에 2.6%로 상향 조정했다가 이번에 다시 낮춰잡았다. 1분기 때 수출 회복세로 경기 완화 기대감이 커졌지만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자 전망치를 바꾼 것이다.
KDI 측은 "기존 전망에 비해 수출 증가세는 확대되겠지만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면서 경기 회복이 다소 지연될 전망"이라고 짚었다. 수출의 경우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이지만 내수는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기존 전망치를 하회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 물가, 경기에 비해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며 내수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게 KDI 평가다.
올해 민간 소비는 기존 전망(1.8%)보다 낮은 1.5% 증가율이 예상된다. 설비 투자의 경우 반도체 성장세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기존 전망(2.2%)보다 크게 낮은 0.4% 증가율을 보일 전망이다. 건설 투자의 경우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 부실 여파가 제한되면서 감소 폭이 0.4%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금리 인하가 생각보다 더 지연되고 있다"며 "2분기에 고금리 관련 부정적인 영향이 강했던 측면이 있어 (민간 소비 전망치를) 많이 낮췄다"고 설명했다. 또 "설비투자도 금리 영향을 받기에 고금리 장기화가 투자 지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4% 하향 조정
내수 부진으로 물가상승률과 취업자 수 증가 폭도 하향 조정됐다. KDI는 최근 국제 유가 하락 상황을 반영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기존 전망(2.6%)보다 낮은 2.4%로 제시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도 기존 전망(2.3%)보다 낮은 2.2%로 내다봤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4만명에서 20만명으로 하향 조정했다. 소비 전망을 하향 조정한 만큼 연관해서 살피는 취업자 수도 내려 잡았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경제활동참가율을 발표하진 않지만 이 지표도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업률은 기존과 동일하게 2.8%로 내다봤다.
총수출은 반도체 효과로 기존 전망(5.6%)보다 높은 7.0% 증가세가 예상된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최근 국내 업계가 과반 점유율을 차지하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올해 거래액 증가율을 기존 전망치(44.8%)보다 높은 76.8%로 상향 조정했다. 수출 개선과 내수 부진 영향으로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금리 정상화, 불필요한 내수 부진 해소"
KDI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내수 회복이 더 느려질 것으로 봤다. 민간 부채가 대규모로 늘어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가계 소비뿐 아니라 기업 투자 여력이 제한돼 내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지다.
정 실장은 "물가가 안정된 상황에서 금리를 정상화한다면 불필요한 내수 부진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계 부채·부동산 위험과 관련해선) 거시 건전성 정책을 우선 도입해 금융 안정을 추구하고 물가, 경기를 감안하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언제 조정하더라도 국내 경기 상황과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가 요동치며 미국 경제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과 관련해선 아직은 뚜렷한 지표가 없다는 게 KDI 평가다. 정 실장은 "미국 경제 급락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표가 주식 시장 외에 많지 않아 (경제 전망에) 포함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미국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 요인으로 서술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모든 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그에 따른 내수 증진 효과는 일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정 실장은 "만약 (13조~18조원 사이로) 집행이 된다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1% 상향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지정학 위험 확대 시 경기 회복 지연
향후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을 보면 세계 경제는 올해를 포함해 내년까지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과 같은 3.2%로 제시했다. 실질실효환율로 평가한 원화 가치는 최근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 위험이 커지거나 중국, 미국의 경기가 안 좋아질 경우 우리 경제 회복세는 더욱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동 지역 이슈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연말 미국 대선 이후 보호 무역주의가 강화되면 국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에 따른 유가 하락을 반영한 올해 원유 도입 단가(두바이유 기준)는 기존 전망치(배럴당 85달러)보다 소폭 하향 조정한 82달러다. 내년 유가(배럴당 82달러)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세종=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