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인데, 돈 없어도 신청해야지"
전날 밤 좋은 꿈을 꿨다는 필자의 한 친구는 지난달 29일 경기도 화성시 ‘롯데캐슬 동탄’ 1가구(전용면적 84㎡)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신청하며 이같이 밝혔다. 집을 한 채 가진 그를 포함한 294만4780명이 1가구를 받기 위해 청약에 나섰다. 청약자가 몰려서 접수 홈페이지인 ‘청약홈’은 마비가 됐다. 청약 일정을 하루 늘려 신청받을 정도였다.
청약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3가구 모집에 101만명이 몰리면서, 역대 최대 청약 기록을 썼는데 이를 넘어섰다. 경쟁률도 지난해 6월 진행한 서울 동작구 흑석 자이에서 나온 82.9만 대 1을 뛰어넘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6%가 이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청약했다. 이들 대부분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라 보기는 어렵다. 시세 차익일 가능성이 크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4억8200만원이다. 반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14억5500만원에 거래됐다. 전매제한이 3년이지만 최초 당첨자 발표일부터 적용되기에 전매가 가능하다. 실거주 의무도 없어, 오는 9일 계약금 20%를 내고 이후 2개월 이내에 잔금(80%)을 치르면 매각할 수 있다. 약 1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분양가는 현재 이 아파트의 전세가 수준으로 ‘0원’ 투자도 가능하다. 청약 일정이 알려진 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매 제한이나 대출 조건을 묻는 글들이 줄을 이었는데, ‘일단 넣고 고민하세요’라는 짧은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무순위 청약은 ‘묻지마 청약’이 됐다. 그렇다고 294만명의 청약 신청자를 투기꾼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정부가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시세차익 10억원‘ 로또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자기 이름을 적은 것을 두고 잘못됐다 할 수는 없다. 4억원대라는 낮은 분양가가 형성된 것이나, 누구나 청약할 수 있는 무순위 전형을 만든 것 모두 정부다. 이 아파트는 2017년 분양했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4억원대에 분양가가 잡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정부가 무순위 청약의 무주택·거주지 요건을 폐지하면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로또 청약이 됐다. 지난해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의 무순위 청약을 앞두고 무순위 요건을 완화했다. 899여가구의 미계약분이 발생해 미분양 가능성이 높았던 이 단지는 무순위 요건 완화 여파로 완판에 성공했다. 청약통장 4만여 개가 몰리면서 최고 경쟁률 655 대 1을 기록했다.
이번에 청약했던 필자의 친구는 결국 당첨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돈을 보고 청약했기에 기대감도 크지 않았다고 했다. 그를 포함한 294만명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정부가 이뤄줘야 할 꿈은 이들의 청약 대박이었을까. 이런 청약 열풍에도 자금 여력이 없어 신청조차 못 하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어야 하지 않을까. 무순위 자격을 높였다면 단 1가구라도 완벽하게 무주택자의 몫이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단 한 가구라도 더 서민을 위해 배정한다’는 단호한 정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좋은 사례가 되지 않았을까. 로또로 전락한 청약제도 개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황준호 건설부동산부장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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