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큐텐 대표, 겸업금지 풀린 2019년부터 '몸집 불리기'
돈 안들이고 티몬·위메프 인수
나스닥 상장 큐익스프레스 물량 늘리기에만 골몰
"전 세계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잇는 ‘글로벌 e커머스 생태계’를 한국을 중심으로 완성하겠다." 올해 초 미국의 e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인수한 뒤 구영배 큐텐 대표가 한 말이다. 위시는 전 세계 200여개국에서 33개 언어로 서비스 중이라고 하지만 시장에선 이른바 ‘한물간’ 플랫폼으로 여겨졌다. 2020년 월간 사용자가 1억 명에 달했지만 인수 당시엔 중국 쇼핑 앱에 밀려 많이 쳐줘도 1000만 명으로 쪼그라든 상황이었다. 10분의 1토막이 난 데다가 지속적으로 하향세인 위시를 23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을 그는 ‘글로벌 e커머스 생태계’라는 목표로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전략은 위시 인수를 비롯해 줄곧 ‘몸집 불리기’에만 집중돼 있었다. 이번에 티몬과 위메프에서 정산 지연 문제가 터진 것은 이 전략 착오에서 비롯됐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큐텐의 몸집 불리기 전략이 시작된 것은 구영배 대표의 경업 금지 조항이 풀린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대표가 2009년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할 때 계약서에는 ‘10년간 한국에서 동일한 업종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에서 벗어나면서 구 대표의 보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2012년 설립한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한국법인을 세웠고 인도 3위권 오픈마켓인 ‘샵클루스(ShopClues)’를 인수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샵클루스 인수부터 구 대표가 지분 교환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전 세계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으로 물동량이 급격하게 늘고 있었고 11개국 19개 지역의 물류 거점을 활용해 배송을 지원하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입성과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과거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구 대표는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쳐 온라인 물동량이 급격히 불어나자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상장 업무는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맡았다.
나스닥에 상장될 수 있는 지분을 활용하는 전략은 2022년부터 국내 e커머스 플랫폼을 사들일 때도 먹혔다. 이번에 문제가 터진 티몬·위메프를 인수할 때도 큐텐은 현금 한 푼 내지 않고 큐텐과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돈을 들이지 않고 같은 사업을 영위하는 플랫폼을 잇따라 인수한 것은 거래량을 늘려 큐익스프레스가 취급하는 물량을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업계는 본다. 나스닥에 갈 때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가치를 더 높이려면은 유통 물량을 늘려야 했다는 분석이다. 티몬과 위메프가 큐텐에 인수된 후 큐익스프레스에 물량을 몰아주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세 업체는 모두 큐익스프레스와의 통합 물류 서비스인 T프라임, W프라임, I프라임을 각각 출시해 핵심 사업으로 키웠다. 위메프와 티몬에서 해외직구 상품을 판매하려는 판매자들은 큐텐에 상품을 등록해야 가능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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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입성’이라는 카드만 가지고 벌였던 일련의 인수전은 이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도 어려워질 수 있는 결과로 치닫게 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큐텐이 무리해서 기업을 인수한 것이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며 "대한민국은 이커머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인 만큼 자신들의 장점을 소비자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찾지 못한다면 비슷한 문제는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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