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간절해 여자가 된 '파일럿'
소재 진부해도…웃음 타율 높은 코미디
*이 기사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포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름, 코미디, 조정석. 일종의 흥행 공식처럼 여겨지는 이 조합이 여름 극장가에서 흥행할까. 패러디는 거들 뿐, 여장과 개인기도 불사한 배우 조정석의 원맨쇼. 영화 '파일럿'이다.
'파일럿'은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됐다. 영화는 철없는 남자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고 여자로 변신해 새 출발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2019)로 데뷔한 김한결 감독이 연출했다.
한국항공사 간판 파일럿 한정우(조정석 분)는 공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조종사로,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비행 실력을 갖춰 유명해졌다.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었다. 사회생활도 잘한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여성 승무원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상사를 보고 유야무야 넘기려다 실언을 한다. 그가 승무원들을 '꽃다발'이라고 표현하며 술을 따르라고 회유한 모습이 온라인에 공개되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정우는 모든 걸 잃고, 빈털터리가 된다. 회사에서 쫓겨나자 다른 회사에 이직하려 하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 급기야 통장잔고가 바닥나고 빚에 허덕이다 여성인 척 다른 항공사에 위장 취업한다. 뷰티 유튜버인 동생 한정미(한선화 분)의 도움으로 화장법을 배우고 이름까지 빌려 여장에 성공한다.
그렇게 남성 한정우에서 여성 한정미로 일하게 된다. 비행 조종간을 잡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여성 파일럿이 된 그에게 전과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틈만 나면 지질하게 치근덕거리는 파일럿 서현석(신승호 분), 회식 자리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대놓고 '외모 평가'를 일삼는 중년 남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해주는 여성 동료 윤슬기(이주명 분)를 만난다. 이들은 서로를 믿고 따르며 연대한다.
'여장한 남성' 설정은 기존 영화에서 익숙하게 다뤄져 왔기에 새로울 건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재벌 중심 사회 부조리, 인기를 좇는 SNS 과시 문화, 직장 내 남성 중심 문화 등을 차용해 다르게 보여주려 한 듯 보인다.
웃음 타율은 높다.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가 좋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호흡으로 선을 잘 잡았다. 전작에서 허공으로 밥알을 내뿜던 '관상'(2013)의 팽헌, 두 손을 비비며 키스의 기술을 뽐내던 '건축학개론'(2012)의 납뜩이, 쓰레기봉투로 만든 옷을 입고 살기 위해 애쓰던 '엑시트'(2019)의 용남으로 쌓아 올린 '코미디 내공'이 느껴진다. 일부 장면에서는 뮤지컬 '헤드윅'의 모습도 떠오르게 한다.
가수 이찬원의 팬으로 설정된 한정우(조정석)의 어머니도 웃음의 한 축을 맡는다. 이찬원을 '아들'이라 부르고,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며 '덕질'(팬 활동)에 빠진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처럼 영화는 최근 분위기를 재빠르게 반영해 공감과 웃음을 준다.
다만 영화는 다소 과한 감이 있다. 젊은 관객을 의식한 듯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장면을 빠르게 전환했지만, 비슷한 설정이 빠르게 반복돼 어수선하다. 우정, 성장, 관계 등 여러 이야기를 아우르며 애써 '가족 영화'로 마무리 지으려는 전개가 다소 벅차 보인다. 러닝타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7월31일 개봉.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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