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노동자 아들 ‘가난한 골퍼’
어릴 때 장갑 한 켤레 선물 받은 계기
4세부터 커버 사용 남다른 클럽 사랑
‘검은 장갑의 마술사’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애런 라이(잉글랜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디트로이트 골프클럽(파72·7370야드)에서 끝난 로켓 모기지 클래식(총상금 920만 달러)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검은색 양손 장갑을 끼는 펄펄 날았다. 대회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질주했지만 최종일 타수를 줄이지 못해 공동 2위에 만족했다.
미국 골프위크는 라이가 검은 장갑을 사용하게 된 사연을 전했다. PGA투어에서 맨손으로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드물지 않지만 양손 장갑을 낀 채 경기하는 골퍼는 흔치 않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알려진 양손 장갑 착용 선수는 톰 게이니(미국)다. 2012년 맥글래드리 클래식에서 PGA투어에서 한차례 우승을 거둔 게이니는 별명이 ‘양손 장갑’일 만큼 제법 유명했다.
라이는 8세 때 골프 대회에 나섰다. 그때부터 항상 양손에 장갑을 꼈다. 어려서부터 비롯된 습관이다. 라이는 잉글랜드 울버햄프턴 출신이다. 인도계 노동자의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케냐에서 태어났다. 골프를 배우기가 쉽지 않은 가정형편이었다. 제조사로부터 장갑 한 켤레를 선물 받은 뒤부터 계속 양손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그는 "한 번은 아버지가 골프백에 양손장갑을 챙기지 않아 왼손장갑만 끼고 플레이했는데, 아주 끔찍했다"면서 "그립 감각도 잃어버리고 플레이가 엉망이었다. 그때부터 반드시 양손에 장갑을 꼈다"고 설명했다.
양손 장갑 외에 아이언 커버를 씌우고 플레이를 하는 것도 특이하다. 어려운 형편에도 비싼 골프채를 사준 아버지 덕분에 생긴 습관이다. "아버지는 내가 4세 때부터 골프 장비를 사주셨다. 7세 때 아버지가 타이틀리스트 아이언을 사주셨는데 자랑스럽고 좋았다. 골프장 회비도 내주셨고, 입장료도 내주셨다. 절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는데 항상 가장 좋은 클럽을 사주셨다."
라이가 플레이가 끝나면 아버지는 아이언 하나하나 핀으로 그루브를 청소하고 기름칠을 했고, 이후 아이언 커버를 씌웠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언에 커버를 씌웠고, 그건 내가 가진 물건의 가치를 고맙게 여기는 한 방식"이라고 전했다.
1995년 3월생인 라이는 올해 29세다. 2018년 혼마 홍콩 오픈에 이어 2020년 에버딘 스탠더드 인베스트먼트 스코티시 오픈에서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를 연장에서 제치고 우승을 거두는 등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에서는 2승을 올렸다.
2022년부터 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적응하고 있다. 아직 우승은 없지만 PGA투어에서 85개 대회를 뛰면서 8차례 ‘톱 10’에 올라 통산 609만2007달러(약 84억원)를 벌었다.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해 세계랭킹은 지난주 68위에서 59위로 도약했다. 개인 최고 순위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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