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미등록 업체가 고객과 체결한 '주식 리딩방' 계약이 자본시장법상 금지된다고 해도, 계약의 사법상 효력 자체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미등록 업체의 투자자문업 영업을 금지한 자본시장법 제17조를 이에 위반한 행위가 무효인 효력규정으로 볼 수 없고, 단속규정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또 대법원은 금융투자업자의 손실보전 약정 등을 금지한 같은 법 제55조를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 유추적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증권정보 제공업체 A사가 전 고객 B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제17조가 강행규정임을 전제로 이 사건 계약이 그 규정을 위반해 무효이거나,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해 자본시장법 제55조를 유추적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이 사건 계약의 사법상 효력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2호에서 정한 구체적인 당해 사건에 적용할 법령의 해석에 관해 대법원이 내린 판단과 상반되는 해석을 전제로 한 경우로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투자판단이나 금융투자상품의 가치에 관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유사투자자문업자 신고만 했을 뿐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A사는 2021년 12월 B씨와 가입금 1500만원을 받고 1년 간 주식 정보 등을 제공하기로 하는 '증권정보제공 VVIP 서비스 가입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서비스 제공기간이 지난 뒤 목표 누적수익률이 700%에 이르지 못하면 A사가 6개월 동안 추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200%에 미치지 못하면 가입금 전액을 환급해주기로 하는 특약사항이 붙어있었다.
B씨는 신용카드로 1500만원을 결제했고, A사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B씨에게 매수할 주식 종목과 수량, 처분 시점 등 주식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예상한 수익이 나오지 않자 B씨는 2022년 3월 A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면서 A사와 합의서를 작성했는데, A사가 B씨에게 환불계산식에 따라 산정한 533만원을 환불해 주되, 향후 B씨가 환불금액에 대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위반하면 환불금액의 2배를 위약벌로 A사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A사는 B씨에게 약정한 금액을 환불해줬다.
문제는 B씨가 A사와의 약속을 어기고 신용카드 회사에 A사로부터 환불받은 533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약 967만원에 대한 결제 취소를 요청해 환불받으면서 발생했다.
결국 A사는 B씨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B씨가 결제를 취소해 환불받은 약 967만원과 합의서에 기재된 위약벌 금액, 즉 환불금액인 533만원의 2배까지 모두 2033만원과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앞서 1심과 2심 법원은 합의서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계약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B씨가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에서 B씨는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업 등록을 하지 않은 A사가 자신과 체결한 투자자문계약은 강행규정인 자본시장법 제17조에 위반돼 무효이며, 700%의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손실보전 약정 역시 같은 법 제55조에 따라 무효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무효인 계약을 전제로 작성된 합의서 역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이 같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유사투자자문업자인 원고가 특정인에게 금융투자상품인 주식의 가치 또는 그에 대한 투자판단에 관한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투자자문업을 영위하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상품인 주식의 거래와 관련해 사전에 투자자가 입을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해 줄 것을 약속하거나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계약으로서 강행규정인 자본시장법 제17조와 제55조에 각각 위반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라며 "이 사건 합의서 또한 이 사건 계약의 효력이 인정됨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마찬가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7조가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자의 투자자문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445조 1호에 따라 형사처벌하고 있지만, 사인간에 체결된 투자자문 계약의 사법상 효력까지 무효로 하는 '효력규정'으로 볼 수는 없고, '단속규정'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업체의 투자일임업과 투자자문업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17조는 고객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하자는 것이 입법취지인데, 이를 위반해 맺은 계약 자체가 사법상 효력까지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없고, 효력을 부인해야만 비로소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위 규정은 효력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금융투자업자 및 그 임직원과 고객 사이가 아니라 사인들 사이에 이뤄진 손실보전 내지 이익보장 약정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제55조를 유추적용할 수 없고, 그 약정의 사법적 효력을 부인할 근거도 찾기 어렵다. 나아가 금융투자업자 및 그 임직원이 아닌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체결한 계약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 제55조를 유추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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