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어디까지 왔나…‘AI 연예인’ 시대의 재림
1998년 매력적인 남녀의 외모를 합성해 만든 사이버 가수 아담은 ‘AI 연예인’의 시초로 통한다. 당시에는 3D 기술이 고도화하지 못해 ‘가짜 티’가 났다. 2024년 학습을 통해 진화 중인 AI 기술은 다르다. AI 창작물은 진짜처럼 자연스럽다.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음주운전 등으로 영화·드라마·공연 제작비 수백억 원이 공중분해 되자 대중문화계에서는 ‘AI(인공지능) 연예인이 낫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AI 연예인’ 시대는 머지않았다.
‘대역 필요 없어’ AI로 젊은 시절 복원
최근 영화·드라마 등 여러 콘텐츠에는 AI 기술로 인물을 모방하거나 목소리 합성을 통해 대사를 말하는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중문화계에서 활용되는 AI 기술은 ‘본체’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본체’가 있는 경우, 딥페이크(AI로 만든 영상·이미지 합성 조작물)와 디에이징(현시점보다 나이를 어려 보이게 하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이미지·음성 등을 만들어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지난 2월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 모습을 AI로 만들어 공개했다. 그의 어린 시절 사진을 수집해 2D를 3D로 변환해 아역 강지석 배우의 얼굴에 합성했다. 최근 서울우유 광고에 등장한 박은빈의 어린 시절 모습은 실제 박은빈의 어린 시절 사진을 AI로 학습해 구현한 것이다.
OTT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는 60대 최민식이 연기한 차무식의 30대 시절 모습을 AI와 디에이징 기술로 표현했다. AI가 딥페이크 방식으로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젊은 시절로 만들어낸 후 미세하게 바꿔 완성했다. 윤여정은 KB라이프생명 광고에서 20대 모습으로 등장했다. 젊은 시절 작품을 토대로 AI 딥러닝에 사용할 얼굴 데이터의 특징을 분석해 유사성을 산출했고, 20대처럼 보이도록 이미지나 영상을 조절하는 디에이징 기술을 접목했다.
영화 ‘원더랜드’는 촬영을 마친 후 세상을 떠난 배우 고(故) 이얼의 젊은 시절 모습을 ‘생성형 AI’ 기술로 만들었다. 영화는 2021년 크랭크업했고, 이얼은 2022년 식도암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제작진은 후반작업 과정에서 이얼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별도 촬영이나 대역 없이 AI 기술로 구현했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2회 방송에서 주인공이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걷는 환각 장면을 생성형 AI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해외 풍경을 촬영해오는 수고와 비용을 덜었다.
아이돌, 뉴스앵커도 ‘AI 인간’
‘본체’ 없이 생성형 AI 등을 활용해 외형과 목소리를 만드는 버추얼 휴먼(가상인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슈퍼카인드는 AI 멤버 2명과 인간 멤버 5명으로 결성된 7인조 보이그룹이다. AI 멤버로만 구성된 4인조 걸그룹 메이브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 속 등장하는 AI 그룹 ‘나비스’ 데뷔를 준비 중이다.
국민대학교 AI 디자인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은 3인조 AI 걸그룹 '키지'의 ‘원 스텝’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기획부터 음원 제작과 인물 생성, 디자인, 영상 편집 등 제작 과정에 AI 프로그램을 활용했고, 멤버 이름과 설정은 AI 챗봇인 ‘챗GPT’로 지었다.
KBS는 AI가 진행하는 라디오 음악방송 ‘누군가 어딘가에’를 선보였고, MBC는 AI PD가 연출한 예능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를 방송했다. MBN은 2020년부터 김주하 앵커의 모습을 AI로 재현해 'AI 앵커 뉴스'를 전하고 있다. 최근 지역민영방송사는 AI 앵커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CJB청주방송, JIBS제주방송, G1방송(강원)이 주말 뉴스에 AI 앵커를 도입했다. KNN(경남)은 오는 7월 시범 도입을 준비 중이다. AI가 실제 기자들의 표정, 입 모양, 음성 등 데이터를 분석해 만드는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엔터 업계에서는 AI 기능을 갖춘 ‘연예인 로봇’이 도입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달 열린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 총회 연설에서 “AI 챗봇과 아바타,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생긴 혹은 더 매력적인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간 팬들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발맞춰 카이스트(KAIST)는 최신 과학기술을 K-콘텐츠에 접목하는 취지에서 지드래곤을 특임교수로 초빙했다.
영화도 AI가 제작…영화제 발 빠른 대응
AI가 영화도 만든다. 스타트업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대표인 1993년생 권한슬 감독이 만든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은 최근 아랍 두바이에서 열린 제1회 인공지능영화제(AIFF)에서 대상을 받았다. 각국에서 500여편이 출품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제작에 5일이 걸렸고, 모든 장면·음성은 실사 촬영과 CG 보정 없이 생성형 AI로 만들었다. 권 감독은 “오픈AI의 ‘소라’(Sora) 공개 등 AI를 통해 영상 제작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수상해 의미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작업한 설한울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AI 기술을 연구개발(R&D)해 다양한 AI 콘텐츠를 시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영화제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경북도는 지난 15~16일 AI·메타버스 영화제를 개최했고,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는 AI 영화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세계 AI 영상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워크숍, 콘퍼런스를 연다. AI 영화 제작 워크숍에는 참가자 30명 모집에 600여명이 몰렸다. 부산 영화의전당도 오는 11월 AI 영화제를 준비 중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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