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시추 한 번에만 1000억원 소요
전담기관인 석유공사는 정작 '자본잠식'
MB 정부 자원외교 실패로 부채 눈덩이
정부 재원, 해외 투자로 비용 충당 계획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가스가 매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이후 비용을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습니다. 특히 시추 한 번에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지만, 전담기관인 한국석유공사가 ‘자본잠식’이라는 점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자본잠식은 어떤 상태일까요? 왜 석유공사는 자본잠식에 빠졌고, 시추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일까요?
자본잠식이란 쉽게 말해 적자가 커지면서 빚이 쌓이고 투자했던 금액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자본금이 서서히 깎이는 과정을 회계 용어로 ‘부분 자본잠식’이라고 하죠. 만약 부분 자본잠식이 계속되면 자본금 자체가 완전히 바닥날 수도 있겠죠. 이를 ‘완전 자본잠식’이라고 합니다. 완전 자본잠식이 된 기업은 자산보다 빚이 더 많고, 자본은 마이너스를 기록하죠.
석유공사의 재무제표를 볼까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지난해 석유공사의 자산총계는 18조2294억원입니다. 그런데 부채총계는 19조5781억원이죠. 빚이 자산보다 더 많죠. 재무제표에서 자산은 부채와 자본의 총합계로 표시합니다. 따라서 자본은 -1조3486억원입니다. 즉 석유공사는 현재 기관을 통째로 팔아버려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석유공사가 원래 재무상황이 좋지 않았던 기관은 아닙니다. 석유공사의 부채는 2006년 3조원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부채가 2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5년여 만에 부채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어난 겁니다. 결국 석유공사는 연간 기준으로 2020년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1979년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죠.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석유공사는 과도한 부채 때문에 매년 이자만 4000억원을 부담하는 기업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어쩌다 석유공사가 자본잠식에 빠지게 됐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자원외교 실패’를 꼽습니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자원외교를 내세우며 해외에 있는 석유와 광물 확보에 나섰습니다. 이에 석유공사도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을 4조8000억원에, 스코틀랜드 석유·가스탐사기업 ‘다나 페트롤리엄’을 약 3조4000억원에 샀습니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회간접자본(SOC) 연계 사업에도 1조원을 투자했고요.
투자가 성공했다면 좋았겠지만 관련 사업은 처참한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하베스트 투자입니다. 하베스트는 2019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모든 연도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누적투자 실적도 저조합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석유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하베스트에 투자된 금액이 총 7조5766억원이었지만, 회수한 금액이 490억2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죠. 꼼꼼하지 못한 사업설계 및 검증, 비상식적인 투자 결정이 석유공사를 자본잠식으로 이끌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현재 자원량이 최대 140억배럴에 달할 수 있다는 포항 영일만 일대 시추에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는 점이죠. 시추는 한 차례 시도에만 약 1000억원 이상의 돈을 써야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6년까지 동해 심해에 총 다섯 개의 시추공을 뚫는다고 했으니 단순 계산으로 총 5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겠죠. 지금 석유공사가 흑자를 내고 있다지만 2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전히 자본잠식 상태임을 고려하면 쉽게 낼 수 있는 비용은 아니겠죠.
어디선가 돈을 끌어와야 하는 데 우선 석유공사가 올해 배정받은 관련 예산은 턱없이 적습니다. 석유공사는 석유·가스 등의 시추를 위한 유전개발출자사업 예산을 받는데 39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관계부처 및 국회와 협의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공사의 해외투자수익도 활용하기로 했죠. 또 장기적으로는 해외 메이저 회사들의 투자를 받는 방안도 거론됐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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