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언론 칼럼서 "슬픈 역사 한국 너무 애틋"
"목숨 걸고 둔다" 1986년 휠체어 대국 유명
일본 바둑 역사상 최다 타이틀(76개)을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조치훈 9단(68)이 숱한 귀화 권유에도 한국 국적을 지켜온 이유를 밝혀 화제다.
조 9단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연재하는 '나의 이력서'라는 칼럼을 통해 "강대국들 사이에서 슬픈 역사를 짊어졌던 한국이 너무도 애틋해 국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이는 모두 일본 국적"이라며 "나 자신도 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조 9단은 일본 기원 소속이나 한국 국적을 지키며 한국 이름으로 줄곧 활동했다. 그는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6세 때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으며, 1968년 11세에 일본 기원 남성 최연소 프로바둑 기사로 입단한 이후 일본 기원 사상 최다 타이틀 획득, 일본 기원 사상 공식전 최다승 등의 기록을 수립하며 일본 바둑의 역사를 써왔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일본 기원 등에서도 여러 차례 귀화를 권유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예와 부를 안겨준 (일본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묻힐 묘는 일본에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뼈 한 조각은 (고향인) 부산 앞바다에 뿌려주면 고맙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9년 학술이나 연구,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자수포장(紫綬褒章)을 조 9단에게 수여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각별한 생각이 들었다"며 "일본에 사는 한국인에게 격려가 된다면 기쁠 것"이라는 심경을 밝혔다.
조치훈 9단은 ‘투혼’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바둑 기사로 불린다. 1986년 ‘휠체어 대국’은 조 9단의 바둑 인생을 상징하는 승부로 알려졌다. 그는 교통사고로 전치 3개월 중상을 입고서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대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가 남긴 "목숨을 걸고 둔다"고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지난해 1600승을 달성한 조 9단은 앞으로도 현역 생활을 꾸준히 이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도 매일 바둑 공부를 한다. 대국에서 비참하게 패배하는 건 괴롭다"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야말로 고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