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여성을 공모해 성폭행한 혐의로 전 강원FC 축구선수 2명이 징역 7년 형을 확정받았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김대원씨(25)와 조재완씨(29)에 대한 상고심에서 두 사람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5년간 신상정보 공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소장일본주의, 공모공동정범 및 방실침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김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방실침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조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두 사람은 2021년 10월 강릉시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한 여성이 잠든 방에 침입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 경우 폭행·협박을 사용해 간음한 강간죄와 같이 처벌하는 죄다. 조씨는 피해자의 신체를 불법적으로 촬영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의 친구 2명과 만나 술을 마신 뒤 강릉시로 이동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씨가 먼저 피해자를 데리고 모텔로 가 성관계를 가진 뒤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객실 문을 열어둔 채 빠져나와 조씨에게 "피해자가 너를 찾는다. 객실 문을 열어 두었으니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조씨가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객실 문이 닫혀 있었는데, 조씨는 모텔 관리자에게 피해자와 연인 사이라고 속여 방에 침입한 뒤 성관계를 가졌다.
다른 피해자의 일행들이 행방을 궁금해하자 김씨는 '조씨가 피해자와 밖에서 대화 중'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는 문을 열어두고 나왔을 뿐 성폭행 범행까지는 예견하지 못했으므로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자신이 피해자가 있는 모텔 객실에 들어간 것을 주거침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객실에 함께 머물던 김씨의 허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모텔 관리자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기 때문에 침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나 김씨가 직전까지 함께 술자리를 했던 일행들이고, 김씨가 객실 숙박료를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기 때문에 자신도 객실에 대한 점유 권한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조씨는 자신이 피해자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 같은 두 사람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로 판단, 각각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이 사건 객실에 침입하고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하는 것에 대해 피고인들 사이에 묵시적으로나마 공모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조씨의 범행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김씨의 주장도 "김씨의 예상과 다른 방법으로 조씨가 이 사건 객실에 침입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 사이의 공모와 조씨의 범행 사이에 인과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라며 배척했다.
'김씨의 승낙을 받고 들어갔기 때문에 객실에 침입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조씨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씨는 피해자와 함께 이 사건 객실에 들어갔으나, 오후 4시30분경 객실에서 퇴실하면서 객실에 다시 돌아갈 계획은 없었으므로, 위 객실에 관한 사실상의 지배상태를 상실했고, 이 사건 객실은 오로지 피해자의 사실상의 지배상태 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김씨가 애초 피해자와 함께 객실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김씨도 공동 주거권자로서 객실 출입을 승낙할 자격이 있었겠지만, 객실에서 나온 이후에는 오로지 피해자만 객실에 대한 주거권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김씨의 승낙 여부가 조씨의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항소했다.
2심에서 김씨는 검사의 공소 제기를 문제 삼았다. 검사가 공소장에 자신이 공소사실 범행(주거침입준강간) 직전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공소장에 기재한 것은 판사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공소사실 외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공소장 일본주의'에 반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공모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김씨는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조씨에게 모텔에 가볼 것을 권유했을 뿐,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며 공모관계를 부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조씨의 범행에 대해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거침입준강간 범행에 대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공동의 실행행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피해자의 친구 2명을 만나 술을 마시고 강릉시로 이동하면서 피해자 일행 중 누구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지 확인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실을 지적하며 "피고인들은 피해자 등과 강릉시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술에 취한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목적 내지 의도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김씨는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진 직후 조씨에게 '성관계를 하러 객실로 오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메시지를 보냈지만 조씨가 응하지 않자, 조씨의 집 앞에서 조씨를 만나 '문을 열고 나왔으니 가보라'라고 말했는데,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들며 "조씨가 피해자를 간음할 것을 결정하거나 그 실행 의사를 강화하도록 협력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피고인들이 적어도 그 시점부터는 피해자를 간음하기로 공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김씨가 모텔 객실을 나올 무렵에는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걸 인식했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피해자의 상태를 공유했다"고도 지적했다.
김씨는 모텔 객실 문을 열어둔 채로 나온 것에 대해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생긴 습관"이라고도 주장했다. 축구선수들이 원정경기를 위해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숙박업소에 묵는 경우 같은 방을 이용하는 선수들이 객실에 용이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외출하는 습관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설득력이 없다"라며 "오히려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한 김씨가 조씨로 하여금 이 사건 객실 안으로 용이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객실 문을 열어놓았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씨에 대해서도 김씨의 도움을 받아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출입을 시도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모텔 관리자를 속여 들어갔으므로 주거침입이 맞다고 봤다.
주거침입의 고의와 관련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승낙 없이 이 사건 객실에 침입한 것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강원FC는 2021년 10월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고 두 사람에 대해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후 김씨는 강원FC와 계약 기간이 끝났고, 조씨는 계약이 해지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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