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자본확충방안 등 제출 요구
부동산PF 관련 토담대 사업장 현황도 마찬가지
시장 상황 녹록지 않아 예상 익스포저↑
건전성 악화 우려도 있어
경·공매 통해 공급 문제 해결 원하는 당국
업계는 난색…"너무 낮은 가격은 큰 손해"
금융감독원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우려해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자본확충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통상적인 절차라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브리지론 단계의 토지담보대출이 많은 저축은행에 대해 관련 사업장 경매 또는 공매를 활성화하려고 금감원이 압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축은행 업계는 투자금 회수는 차치하고서라도 투자한 사업장이 너무 낮은 가격에 팔리면 손해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난색을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비상시 자본확충방안 및 건전성 관리계획을 제출하라고 최근 요구했다. 해당 계획에는 각 저축은행의 재무구조관리 방안과 비상시 자본을 어떻게 조달할지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만일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상적인 절차를 넘어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17일까지 부동산 PF 토지담보대출 사업장 현황 제출도 함께 요청한 상태다. 저축은행이 가진 부동산 PF 관련 사업장의 규모를 살펴보고 사업성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이 가진 부동산 PF 관련 채권은 브리지론 토지담보대출 형태가 많다. 브리지론이란 시행사들이 착공 이전에 토지 매입 등 부동산 사업장의 초기 개발자금을 단기로 차입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업 초반 시행사들은 제2금융권에 높은 이자를 내며 돈을 빌려 쓰다가 사업성·자산가치 등이 확실해지면 1금융권 자금을 차입하게 된다. 이때 차입금을 본 PF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PF 시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 건설자재 값 상승 등으로 브리지론 실행 당시보다 사업성이 악화한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채권금리 급등 등 자금시장 불안으로 PF 문제를 유예하면서 이자만 내며 버텨왔지만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PF 시장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황이다. 브리지론 문제를 해결하려면 토지나 사업시행권을 매입 당시 또는 장부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매각해야 한다. 토지나 사업시행권 가격을 크게 낮추면 비용 부담을 줄여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행사가 사업을 맡게 되며, 기존 브리지론 참여 금융사들의 손실 현실화는 불가피하다.
저축은행들은 부실한 브리지론을 처분하는 등 노력을 다했으나 여전히 부동산 PF 예상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는 최대 4조8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요 16개 저축은행 부동산 PF 익스포저 규모는 7조7000억원이다. 2022년 말 9조1000억원에 비해 1조4000억원 줄어들었다. 이 중 본 PF는 1650억원, 브리지론은 1조1755억원 감소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회복이 더디게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16개 저축은행 부동산 PF 익스포저 예상 손실 규모는 2조6000억~4조8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결국 금감원은 부실한 사업장을 경·공매를 통해 빠르게 정상화하고 부동산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부동산 PF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이번주까지 주요 시중은행을 비롯해 상호금융기관,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 보험사 등과 개별 또는 업권별 면담을 마친다. 면담의 주요 내용은 경·공매 활성화 방안이다. 부실 사업장 정리를 촉진하고자 기존의 '양호(자산건전성 분류상 정상)-보통(요주의)-악화우려(고정이하)' 3단계 기준을 '양호-보통-악화우려-회수의문' 4단계로 세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장별 PF 대출 충당금 최소 적립률도 정상(2%), 요주의(10%), 고정(30%), 회수의문(75%) 등으로 나눠 경·공매를 통한 부실 사업장 정리와 재구조화 등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채산성이 떨어지는 사업장, 브리지론은 주인이 바뀌는 게 적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 PF 또는 사업성 있는 사업장에 대해 노력해주는 금융사에 한시적인 인센티브를 주거나 자금 공급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부동산 PF 문제를 놔둘 경우 저축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 또한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고위험 부동산 PF 사업장이 전부 부실화하는 경우와 해당 부실이 다른 사업장으로 펴지는 경우로 나눠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지난해 9월 기준)은 첫 번째 경우에 14.1%에서 12.6%로 하락했다. 두 번째 경우에는 11.4%까지 낮아졌다. BIS 비율은 자본 건전성의 지표로서 낮을수록 건전성이 떨어진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에 일상적으로 권고하는 BIS 비율은 9~10% 이상이다. 경영개선 권고가 가능해지는 적기 시정조치 기준은 총자산 1조원 이상일 경우 BIS 비율 8% 미만, 1조원 미만일 경우 7% 미만이다. BIS 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영개선 요구를, 2% 미만일 땐 경영개선 명령을 할 수 있다. 명령에는 6개월 영업정지 등이 포함된다.
당국은 추가로 고정이하여신비율의 상승폭도 유의하고 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전체 대출금 중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 비중으로 금융당국 권고치는 8%다. 지난해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7.72%로 치솟으며 권고치에 육박했다. 2022년(4.08%)보다 3.64%포인트 오른 수치다. 고정이하여신비율 상승은 소형 저축은행은 물론 중·대형사에서도 발생했다. 자산 규모 6위 페퍼저축은행(12.86%)과 9위 상상인저축은행(15.05%)이 8%를 넘겼다. KB저축은행(10.11%) 등 주요 금융지주에 속한 저축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축은행 업계는 부동산 PF 관련 당국의 압박에 난색을 보인다. 자산 가격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하더라도 민간 운용사들은 더욱 낮은 가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큰 손해를 보면서 경·공매에 뛰어드느니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시장이 없다”며 “저축은행도 손실을 감내할 필요가 있지만 자산 가격의 20~30% 수준은 과하다는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국은 빨리 털고 가자는 뜻이겠지만 6개월만, 1년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축은행이 많다”고 전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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