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후보에 막말·혐오 난무하지만
미국은 정치 풍자 코미디 가능해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리턴 매치'인데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대선에서 맞붙는 것은 무려 112년 만이다. 그러면서 상대 후보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혐오, 각종 리스크를 안고 치러지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점도 문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막말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내가 선거에서 지면 국가가 '피바다(blood bath)'가 될 것”이라거나 “이민자는 사람이 아니다” 등의 위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폭력적 콘텐츠를 온라인에 자꾸 올려 물의를 빚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에 한 픽업트럭의 도로 주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게시했다. 차량 후미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결박된 채 모로 누워 있는 장면을 묘사한 듯한 그림이 붙어 있었다. 피랍 상황이 연상되는 그림이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S에 자신의 성추문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를 비판하며 그의 딸까지 싸잡아 '트럼프 혐오자'라고 매도하고 실명을 공개했다. 지지층의 공격을 유도하는 이른바 ‘좌표 찍기’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 측도 정도만 다를 뿐 조롱과 비하는 마찬가지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캠프는 최근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쪽박 트럼프는 지하실에 있다"며 트럼프 이름 앞에 '파산하다'는 의미의 'broke'를 붙였다. 또 "범죄자들과 음모 이론가들이 트럼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 등에 대한 4건의 형사 기소와 자산 부풀리기 사기 의혹 및 명예훼손 관련 민사 소송으로 천문학적인 송사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조롱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81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다. 그가 올해 대선에서 이기면 집권 2기 말 87세가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77세로 역시 나이가 많다. 미국 현지 언론은 올해 미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후보 간의 경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이렇게 나이가 많고 전혀 호감을 얻지 못하는 두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적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현재 총선을 불과 1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한국의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선거전이 달아오르면서 "×같이" "쓰레기" "짐승만도" 등의 격한 발언이 연일 상대 진영을 향해 쏟아진다. 혐오와 갈등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와 다른 게 있다. 바로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정치 풍자 코미디가 흔하다는 점이다. CBS의 간판 토크쇼인 ‘레이트쇼’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는 "입구로 바이든이 들어서자 지지자들은 ‘4년 더!’라고 외쳤죠. 입구에서 연단까지 걸어가는 데 4년 걸린다는 소리 맞죠?"라고 바이든의 고령을 풍자했다.
또 지난달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 도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SNS에 사회자 지미 키멀에 대해 "역대 오스카에서 그보다 최악인 진행자가 있었나"라고 악평을 올렸다. 그러자 키멀은 "감사합니다. 아직 깨어 있다니 놀랍네요. 감옥에 갈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라며 직격했고 객석에선 갈채와 폭소가 쏟아져 나왔다. 거침없는 조롱이 가능한 미국의 정치 풍자는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부럽기만 하다.
조강욱 국제부장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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