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남양연구소 세계유일 상용환경풍동실 공개
혹한·혹서 환경서 실주행 환경 그대로 모사
고성능 전동화 기술 담금질·배터리 기술 내재화
버스나 트럭은 승용차보다 훨씬 많이 다닌다. 비사업용 승용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31㎞ 정도로 1년이면 1만1000㎞가량 주행한다. 버스 같은 사업용 승합차의 평균 주행거리가 하루 145㎞, 1년이면 5만3000㎞ 가까이 된다.
트럭 등 화물차의 연간 주행거리가 4만8000㎞, 견인·구조 등에 쓰는 특수차는 평균 5만7000㎞에 육박한다. 버스·트럭이 주행거리 100만㎞를 넘기는 건 아주 드문 일이 아니다. 여기에 도심은 물론 험로 주행도 잦다. 승용차보다 내구성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배경이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산실로 꼽히는 남양기술연구소에는 이러한 상용차 개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용환경풍동실이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대차그룹만 갖춘 시설이다.
일반 승용차나 내연기관 상용차를 대상으로 하는 풍동 시험실은 많지만 친환경 상용차까지 염두에 두고 설비를 구비한 곳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층버스나 길이가 18m에 달하는 굴절버스 등을 포함해 다양한 전기버스 모델을 생산한다. 수소연료전지로 가는 대형 트럭을 양산하는 곳도 현대차뿐이다.
이강웅 현대차그룹 상용연비운전성시험팀 책임연구원은 "모든 종류의 차량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세계 첫 상용차용 풍동 시설"이라며 "조명이나 전선 등 시험실 모든 시설물은 수소 폭발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안전기준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지난 27일 국내외 취재진이 찾은 시험실 안쪽에선 대형 수소연료전지 트럭 엑시언트가 다이너모미터(모터 시험 동력계) 위를 주행하고 있었다. 상용차는 짐을 실어야 해 뒷바퀴 굴림이 대부분이라 앞바퀴는 미국 BEP사에서 만든 특수설비로 고정해둔 터였다. 여기에 커다란 쇠사슬로 차량 뒷부분을 결박했다.
이날 시험실 내부는 중동지역 테스트 기준 온도인 45도에 맞춰져 있어 후덥지근했다. 내부 천장과 옆쪽에는 실제 태양과 비슷한 빛을 내리쬐도록 조명이 설치돼 있다. 빛으로 열을 머금은 차량 실내는 60도가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 현지에서 판매하기 위해선 이러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시험실은 냉각·열해를 비롯해 연비, 냉시동, 히터·에어컨, 충·방전, 동력, 모드주행, 배기가스인증 등 실차 주행과 관련한 모든 성능시험이 가능하다. 온도는 영하 40도부터 60도까지, 습도는 5~95%까지 조절 가능하다. 차량 앞쪽에는 시속 120㎞까지 기류를 만들어 실제 주행상태와 비슷한 조건이 구현된다.
시베리아 겨울의 추운 환경이나 중동 사막에서도 주행 가능한 차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을 모사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수소 트럭은 고산지대가 많은 스위스 도로를 2022년부터 달리고 있다. 미국 서부지역과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수출했거나 앞으로 할 예정이다.
이 시험실은 상용 전기차 개발에도 유용하다. 배터리가 온도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는 만큼 충·방전 등 각종 성능을 살필 수 있어서다. 춥거나 더운 상태에서 충전효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점검할 수 있다.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는 수소 트럭 연비측정법도 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한국에너지공단 측과 협의하고 있다. 천장 쪽에서 연결된 수소 공급 설비가 있어 중량법으로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회사는 전했다.
남양연구소 다른 한쪽에 있는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선 전동화 차량의 주행성능과 직결된 모터와 인버터 기초성능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일을 한다. 기존 파워트레인 개발 조직을 전동화 조직으로 개편하면서 생긴 전동화시험센터 내 마련한 설비다.
가혹한 시험을 반복해 진행한다. 실도로 주행 시험보다 압축해 다양한 상황을 시연해보는 게 가능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 고치는 것도 더 빨리할 수 있다. 곽호철 전동화구동시험3팀 책임연구원은 "모터 단품 시험부터 차량 양산까지 종합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시험을 동력계 장비 개수에 따라 1축과 2축, 4축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축 시험에선 개발 초기 단계로 모터 시스템의 성능 개발이 주목적이다. 2축 시험실은 모터와 인버터에 감속기, 구동축을 추가해 시험한다. 구동계 시스템 전체 효율과 매핑, 냉각 등을 따져본다. 열이 날 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냉각 성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결과를 낸다.
4축 시험실엔 실차가 배치돼 있어 구동계 전체를 평가한다. 실제 쓰는 배터리를 직접 활용한다. 각종 시험은 물론 전비 평가와 같은 인증 관련 시험도 한다. 전기 모터가 과열되지 않게 출력을 제어하는 부하경감 현상을 최소화하는 연구, 경쟁차 차량을 시험해 구동계 시스템 개발 방향을 분석하는 일도 이곳에서 한다.
이곳에서 얻은 다양한 데이터는 전기차 설계·개발 관련 부서와 공유한다. 설계할 때 의도한 대로 성능을 제대로 내는지, 부족한 부분은 왜 그런지 찾는다. 반대로 시험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개발한 신차 콘셉트나 기술 전략을 짜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이 고성능 전기차 영역에선 글로벌 톱티어 수준으로 부상한 데도 이 시험실이 핵심 역할을 했다. 고성능 전기차는 가혹한 조건에서 주행을 고려해야 한다. 아이오닉5N의 최고속도(시속 260㎞)를 달리는 초고속 시험을 비롯한 극한의 부하 조건을 구현할 수 있다. 현재 차세대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험실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밖에 기초소재연구센터 소속 배터리 분석실, 300여가지 시험을 하는 상용시스템시험동도 이날 취재진에 공개했다. 배터리 분석실은 기초단위 셀을 직접 분해해 구조 등을 분석하는 곳으로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배터리 내재화를 구현하기 위한 설비다. 현대차·기아가 자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에 적용할 신규 소재를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에는 내연기관차 대비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중국 자동차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등 시장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며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작은 차이로부터 더 큰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R&D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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