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지층, 후보 공천 취소에 고심
국힘·새미래 반감에 상대 후보 선택 기류도
"진짜 누굴 찍죠?" 지난달 27일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정모씨(47)는 선거 분위기를 묻자 되레 이같이 반문했다. 4·10 총선이 불과 1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충남 세종갑 유권자들은 이른바 '멘붕'(멘탈붕괴의 준말. 허탈감과 상실감이 큰 상황)에 빠졌다. 부동산 갭투기 의혹으로 이영선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낙마하자, 그를 지지하던 절반의 표심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젊은 친구는 똘똘하니 잘할 것 같은데 당이 문제고, 한 명은 민주당 싫다고 뛰쳐나간 양반이라 잘 모르겠고." 대평동 사거리에서 만난 윤모씨(74)는 혀를 차며 두 후보를 이같이 평가했다. 윤모씨는 고개를 들어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세종시갑 국민의힘 류제화 후보와 새로운미래 김종민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번갈아 살폈다. 정권심판론과 이른바 비명(비이재명)계 사이에서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무주공산 된 세종갑…"차악을 뽑겠다"
유권자 대부분은 류제화, 김종민 두 후보의 정치적 배경에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당 색이 투표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2012년 탄생했을 때부터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19·20·21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연이어 당선됐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보람동에 거주하는 이모씨(67)는 "후보 잘못으로 당에서 공천을 취소한 건 잘한 일이지만, 공천 전 후보 검증을 더 꼼꼼하게 했으면 이런 사달이 안 났을 것"이라며 "결국 차악(次惡)을 뽑아야 하는 선거가 된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답했다.
김 후보에 대해선 '그래도 민주당 사람'이란 여론이 감지된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 중인 김모씨(59) "이번 선거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권심판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며 "김종민이 민주당을 나갔지만, 그동안 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람인 만큼 검찰 정권 심판 기조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성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비명계에 대한 반감으로 류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도담동에 거주하는 최모씨(79)는 "당을 버리고 떠난 이낙연 대표가 있는 배신자 당에 표를 줄 바에야 국민의힘에 투표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든다"면서도 "젊은 (류제화) 후보가 똑 부러지게 정책 공약을 발표하는 걸 봤는데 당을 떠나 믿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부동층에서 무더기 기권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세종시청 인근에서 만난 주부 최모씨(53)는 "차라리 투표하지 않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여론조사 꽃'은 지난 25~26일 이틀간 세종갑 선거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후보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류 후보 19.8%, 김 후보는 26.1%로 집계됐다. 지지할 후보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4.6%에 달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 비율 역시 9.5%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CATI) 방식으로 진행됐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응답률 18.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류제화·김종민 두 후보는 "해볼 만하다"
시민들과 달리 정작 세종갑 두 후보는 이번 총선이 "해볼 만하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당 강세 속 정당구도가 허물어지자 양측 모두 이번 선거가 원내에 입성할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서다. 약 55%에 달하는 대규모 무당층의 표심을 획득할 경우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각각 정책 공약으로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류 후보는 아시아경제 통화에서 "견고한 정당구도 때문에 세종시의 발전 전략 및 비전 등을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설득할 기회가 없었다"며 "그동안 묻혀있던 행정수도 이전, 대규모 공실 문제, 지역경제 활성화 문제 등 중요한 의제들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원내 입성 시 가장 먼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20년 동안 발목이 잡힌 신행정수도법을 정비한 다음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 역시 세종을 100만 도시로 행정·국제외교·미래경제의 수도로 탈바꿈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100만 인구는 행정수도 완성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자족 기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며 "디지털·그린·휴먼 3대 산업을 중심으로 행복도시와 면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세종미래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후보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류 후보는 "김종민 후보의 오락가락 행보에서 전형적인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본다"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재선 지역구인 논산·계룡·금산을 떠나 세종으로 지역구를 옮긴 김 후보의 진정성을 의심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사과하는 등 접점을 넓혀가는 김 후보는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독선, 독주로 대한민국은 위기"라며 "기득권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 검찰 정권을 심판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는 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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