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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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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속 여우 무라야마 준지 모티브
1919년부터 22년간 조선총독부 촉탁 활동
묘지 풍수, 자손의 현실적 번영 목적으로 해석
심전개발 기초작업 참여…실제 효과는 미지수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시리즈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도깨비불·여우는 과거 풍년을 예고했다(上)>에 이어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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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총독부 촉탁(특수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이었다. 1919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에 체류하며 조선 민간신앙과 향토 신사를 조사·정리했다. 일련의 보고서도 내놓았다. 자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 민속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아 가치가 적잖게 있다고 평가된다. 가장 유명한 자료는 '조선의 민간신앙 4부작'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 '조선의 점복과 예언'이다.


*무라야마는 1891년 니가타현 가리와군 호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일련종(일본 불교 12대 종파 가운데 하나) 묘코지(묘광사)로 들어가 주지인 무라야마 지젠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다. 일종의 제국대학 예비학교인 제일고등중학교를 다녔으며 스물여덟 살이던 1919년 7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사회학 전공)를 졸업했다. 그는 그해 조석총독부로부터 위촉받아 조선으로 건너왔다. 구관제도 조사사업 가운데 '조선 사회 사정 조사'를 맡았다. 조선총독부 촉탁이 되기 전 대구에서 경찰서장을 역임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측근인 아사쿠라 도시오 등은 그런 경력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무라야마는 부락제, 귀신, 무속, 점복, 풍수, 안택, 기우 등 조선의 민간신앙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입장에서 조선인과 조선 사회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작성한 보고서는 모두 열세 권에 이른다. 같은 촉탁이던 젠쇼 에이스케와 함께 참여한 조사 자료를 포함하면 더 많다고 추정된다. 그는 사립불교학교, 경성공립상업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37년 8월부터 1938년 10월까지는 잡지 '조선'에서 편집을 맡았다. 1941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조선장학회에서 주사로 근무했다. 1945년 스승 무라야마 지젠이 죽자 묘코지 31대 주지가 됐다. 무라야마는 1958년 건강이 악화한 부인의 요청에 따라 도쿄로 거처를 옮겼다. 승적에 오르면서 학계를 떠났으나 평생에 걸쳐 독서에 매진했다.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말수가 극히 적었는데 주로 남의 말을 경청했다고 전해진다. 정형적인 학자 스타일이었다고 추정된다. 한문에 관한 학식이 깊었다는 점은 고문헌을 인용해 작성한 조사 자료에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무라야마는 1968년 일흔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무라야마가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활동한 기간은 1919년부터 1941년까지 약 22년이다. 일제 식민 통치 당국의 필요에 따라 조선의 민속 등을 조사했다. 그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조사 자료의 비중이 약해지자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무라야마가 조선으로 건너온 1919년은 3·1 운동이 벌어진 해다. 조선 민중의 저항에 놀란 일제는 무단통치를 '문화정치'로 바꾸고 기만적인 유화정책과 민족분열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해 9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이는 해군 대장 사이토 마코토. '문화의 창달과 민력의 충실'을 시정방침으로 삼았다. 총독무관제와 헌병경찰제를 폐지했다. 보통경찰제를 실시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 제한을 해제하는 등 몇몇 개량적 정책을 폈다. 본질은 친일파를 육성해 지배체제 안정을 기하려는 민족분열정책이었다. 예컨대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바꾼 건 경찰 업무와 군사 업무를 나눈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반일 운동을 효과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를 강화했다.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1925)을 제정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일제강점기 민간신앙은 새로운 역사 환경에 조응해 여러 측면에서 변화했다. 주요한 요인은 무속 규제 및 단속,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난 미신 타파 운동, 기독교 확산, 조선왕조 멸망에 따른 파장, 식민지 근대화의 문화변동 등이다. 당시 무속을 위시한 민간신앙은 식민지 당국은 물론 기독교 세력, 민족진영 좌·우파, 일반 지식인 및 관련 사회 단체·기관 등으로부터 공격받았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유신 뒤 당대 민간에 뿌리내리고 있던 민간신앙을 음사로 규정하고 탄압한 전례가 있다. 특히 1870년대부터 전개한 신사 일제 조사는 민간신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다양한 신들을 하나의 신으로 단일화했다. 이러한 경험은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됐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조선총독부는 1919년 식민지 통치정책 자료로써 사회 실태를 연구할 필요를 느꼈다. 무라야마에게 5개년 조사계획을 맡겼다. 이른바 '조선 사회 사정 조사'다. 조사 항목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기초조사(토지·생물·인종)와 사회·협동·경제·사상·일상생활·위생·치죄, 사회문제다. 조사는 1923년까지 진행됐다. 관동대지진으로 크게 위축되면서 중단됐다.


*무라야마의 조선 민간신앙에 대한 조사·정리 작업은 국민정신을 진작시키겠다는 다이쇼 천황의 의지가 조선총독부에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면서 제출한 논문 제목이 '일본 국민성의 발달'이었다는 점은 당시 그가 일본의 정치·사회적 지향을 잘 읽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조선총독부 촉탁으로서 조선의 사회 사정 조사를 맡은 배경일 수 있다.


*무라야마는 초기에 조선의 사상과 사회운동을 조사했다. 그 뒤 서민의 의식주, 귀신이나 풍수와 관련한 민속종교, 전통 놀이 등과 관련한 조사 자료를 다수 남겼다. 1923년 '조선사 강좌'에 '풍수에 대하여'를 게재할 즈음부터 풍속 조사는 한층 민속학적 색깔을 보인다.


*무라야마에게 조선 민간신앙은 자연적 신앙을 바탕으로 민간에 통용되는 것이었다. 그는 줄기로 조령(조상의 영혼) 숭배를 주목했다. 그 존재가 영구히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는 생활상의 요구, 특히 감정적 희망이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무라야마는 조선에서 자연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정령이 있다고 믿어 신앙의 대상이 된다고 분석했다. 민중의 인생관이 자기 이외의 힘, 불가사의한 힘인 정령에 의해 그 생활이 좌우된다는 신앙 관념에 입각해 무격(무당과 박수)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봤다. 이 같은 시각에서 간행된 책이 바로 '조선의 귀신'이다.


*귀신은 고대 중국인의 원시적 신의 개념이 그대로 전승된 개념이다. '논어'에서 '귀'는 죽은 사람의 혼령을 지칭한다. '신'은 자연신을 포괄해 신명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조들은 귀신을 음양설로 해석했다. 천지간 기를 음과 양으로 나눴는데, 여기서 음은 백이 되고 양은 혼이 된다고 믿었다. 이 혼에서 승천하는 것은 양으로 신이 되며, 내리는 것은 음으로 귀가 된다고 봤다. 신은 양의 영, 귀는 음의 영으로 본 셈이다. 따라서 산 사람의 영혼은 생령으로 귀신이 될 수 없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귀와 신이 된다고 판단했다.


*조선에서 인식한 현세와 내세 또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죽음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너무 빨리 죽으면 급살(갑자기 닥쳐오는 재액)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병을 앓다가 자손들의 임종 속에 죽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봤다. 아울러 죽은 사람은 자손들에 의해 제사를 받는 가운데 차츰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며, 나중에 조상으로 승격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형태의 일정한 과정이 전형적이고 이상적이라지만 실제로는 만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통과의례를 마치지 못한 이의 죽음이 대표적 예다. 일찍 죽는 조사나 성인이기는 하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미혼자의 경우 원한이 강한 원혼이 된다고 봤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무라야마는 조선 민간에서 인식하는 귀신 관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귀신에는 착한 것도 있지만 악한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형태는 없으나 인위적 행위와 초인적 행위를 모두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우주에 많이 존재하며 사람과 빈번하게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과의 교섭은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이 많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귀신이라고 하면 대개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무라야마는 신령과 잡귀, 잡신을 별다른 기준 없이 단순하게 열거해 설명했다. "귀신이 인간의 혐기적 대상이 되는 데 반해 신은 인간에게 의뢰 대상이다. 귀신이 재앙의 발원이라면 신은 행복의 부여자라는 것이 조선 시대 귀와 신의 대립적 신앙이다. 신명이 자주 귀신을 사역하고 귀신에게 명령하며 목숨까지 관장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는 신앙도 있다. 귀가 신의 통솔 아래 지배당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귀의 재앙에서 벗어나려면 귀를 물리치는 것과 함께 그 통솔자이며 지배자인 신에게 빌어 귀신을 단속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당이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강신의 행위를 한 뒤 병의 근원인 귀신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도 모두 이 신이 제재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생사를 조절한다는 인식에서 생겨난 신앙이다."


*무라야마에게 묘지 풍수란 자손의 현실적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조상에게 안주할 땅을 바치고 이로써 그 영을 영원히 수습하려는 1차원적 추효(죽은 부모나 조상 등의 명복을 빌고 공양하여 효도를 다함) 관념보다 오히려 자손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조상 분묘를 좋은 곳에 마련한다는 이차적이고 이기적이며 현실적인 관념에 바탕을 두고 지탱된다고 봤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조상의 유해를 길지에 안장하는 행위는 '효' 사상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가장 그런 성격이 돋보이는 행위는 유교의 제사다. '효'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된다. 풍수신앙은 자손들이 조상 덕을 직접적으로 받고자 하는 현세 구복적 성격이 더 강하다.


*무라야마는 조선 묘지 풍수의 특징으로 다섯 가지를 거론했다. 첫째는 조선의 풍수가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점, 둘째는 풍수란 땅의 생기를 타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자연스럽게 묘지 풍수가 중요시됐다는 점이다. 셋째는 묘지 풍수의 보급에 불교의 영향이 컸다는 점, 넷째는 조선인의 신앙 가운데 죽은 사람의 뼈가 산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신앙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풍수가 묘지 신앙으로 빨리 수용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조산의 무덤이 후손에 이롭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고 풍수를 방편(그때그때 편하고 쉽게 이용하는 수단과 방법)화했다고 봤다.


*무라야마는 방대한 사진을 수집했고, 그중에서 적절한 것들을 추려 조사 자료로 게재했다. 유족이 소유하던 앨범은 게이오대학 동양사학과 이토 세이지에게 기증됐다. 이토는 적당하게 사례하고 보관하다가 교린대학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할 무렵 노무라 신이치에게 빠짐없이 넘겨줬다. 사진 대다수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것으로 추정된다.


*무라야마가 활동한 시기에 한반도는 토지조사사업이라는 이름의 농지 수탈로 자작농이 광범위하게 붕괴했다. 농촌 갈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나 제의 현장은 대체로 경직돼 있다. 물론 촬영 환경이나 찍는 이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사진에는 지금은 없어진 수많은 민속이 담겨 있다. 말라리아를 치료하려고 발바닥에 적은 부모 이름, 방상씨(조선 왕실 관례, 흉례, 나례에 사용되던 가면)가 등장하는 장례, 각종 질병에 대응하는 공물·시설·정월에 액을 털기 위해 만든 인형 제웅, 영등할미(음력 2월 초하룻날인 영등날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 등이다.


*예부터 조선에서는 사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하늘에 있는 영혼, 즉 귀가 지상에 남겨진 자신의 유골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봤다. 유골이 잘 안치됐을 때는 영혼이 편안히 잠들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귀가 되고 또 여귀(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가 되어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린다고 본 셈이다. 무라야마는 조선에서 묘지 풍수가 발달하게 된 배경을 이러한 귀신 신앙에서 찾고자 했다.


*무라야마는 혈족 중심의 사회성과 가족 중심 제도의 특성에 기인해 조선 문화의 여러 양상이 나타나는데, 그런 특색이 가장 잘 나타나는 사례가 묘지 풍수라고 봤다. “자손 번식, 일가 번영 등을 희망하는 행위는 조선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민속에서도 이런 종류의 욕구가 보이지만, 조상과 부모의 유해를 길지에 매장함으로써 그 목적을 성취하려는 집념만큼은 타문화와 다른 조선 문화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원래 자기 혈족 이외의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조선인의 사회적 특성에 유래하는 것이다. 더불어 부모 또는 가장 지위에 있는 존속에 의해 생활 보증이 주어지는 조선 가족제도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혈족 중심의 사회성과 가장 중심의 가족제도는 조선의 오랜 역사를 일관하는 특색이다. 조선 문화의 여러 양상은 실로 이러한 사회적 특질의 뿌리에서 싹이 텄다고 할 수 있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조선에는 어느 명산, 명당이건 그곳의 묘를 쓰면 그 자손은 복을 받으나 마을 사람들은 화를 입는다는 신앙이 있었다. 자기 일족의 번영을 위해 누군가가 암장하게 되면 그 지역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암장으로 부정을 타서 산신이 노여워한다고 봤다. 마을은 산신의 노여움으로 화(가뭄)를 입게 되지만, 암장한 일족은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이 가물면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암장한 묘를 파내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무라야마는 이렇게 자기 가족, 일족만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조선인이 있는 이유가 조선의 가족 중심 가족제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30년 8월 조선총독부 조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무격 수는 1만2380명에 달했다. 인구 1000명당 무려 0.65명의 비율이었다.


*무속신앙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무(巫)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죽은 조상이 후손들에게 현신해 이야기하고, 신이 인간의 물음에 답하거나 인간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는 무라는 중계인 또는 영매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무는 신병이나 종교체험을 통해 신의 영력을 획득하고 신과 교통하는 자를 가리킨다. 하늘과의 교통은 한국 무당의 오랜 전통적 역할이었다.


*무라야마가 민간신앙 4부작으로 인식한 조선 민간신앙 체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조선에서는 귀신 신앙이 사상의 근간이며, 조선의 문화는 그 영향을 받는다. 둘째, 풍수를 살펴 조상을 좋은 곳, 즉 명당에 모셔야 한다. 셋째, 여차하면 매사를 무격에 의탁해야 한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조선 민간에는 생물과 무생물의 정령이 사람들과 교섭한다는 귀신 신앙이 퍼져 있었다. 전염병이나 온갖 재앙을 전부 이 귀신의 소행으로 보아 귀신의 신의를 점복으로 알고자 했다. 조선 사람들은 귀신이 함부로 남의 집에 붙어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자신이 의탁해 사는 대가로 그 집의 복을 증진하는 일도 있다고 믿었다. 귀신이 들어와 길흉을 알리고 또 귀신을 불러들임으로써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본 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 민간에선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조상신 덕분에 번영하고 행복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손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상을 수습한 곳이 길지가 아니므로 반드시 이장해야 한다고 봤다. 이렇게 이장할 때나 삶이 여의치 못할 때는 무격에 의탁해 귀신으로부터의 재화에서 벗어나곤 했다. 귀신이 신내림(빙의)이라는 형태로 무격의 몸이나 입을 빌어 자기 뜻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무라야마는 당시 통치자나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처럼 조선을 미신을 믿는 미개한 나라 정도로 인식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기술에서 확인된다. "조선 민중의 생활사상에는 스스로 땀 흘려 노력해 생활의 전개를 꾀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힘과 기회를 이용해 자기 생활의 약진을 기대하는 점이 있다. 생활고의 해탈에 대해서는 현상만이라도 타파되면 장래는 어떻게 되든 관계없다는 찰나 관념이 있다."


*무라야마는 미신으로 취급받던 조선 민간신앙을 저급하게 보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민간신앙은 유일한 대중 사상이며 그 기본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일부의 고급 사상이나 신앙 측에서 보면 실로 ‘미신’으로 멸시받을 정도로 저급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원래 대중 사상이 되는 것은 일부 고급한 것으로부터 보면 저급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것이 당연하다. 사상이라는 것이 대중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고급 상태에서는 결코 불가능하여 유지무지를 통해 유지되려면 형세가 저급 시 되는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무라야마의 조선 인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우선 그는 조선의 무격이 원신을 모시고, 원령을 달래는 것을 그 주요한 기능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전통 민간신앙에서의 무격은 선신과 악신을 구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모셨다. 열두거리라 불리는 굿에는 삼신, 성주, 제석, 대감 등 사람들을 보호하는 선신들을 모셨는가 하면, 한편으로 사람들을 위해하는 객귀 등 악신들을 함께 모셨다. 우리 조상들은 풍요와 건강, 행복 등의 복을 빌 때 천지신명이나 수호신, 조상신 등 선신에게 소원을 빌면서도, 한편으로는 질병이나 재앙을 예방하려는 뜻에서 악신에게도 기원했던 셈이다. 현대 일본에도 악신은 존재하며 그것들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믾속사회 속에 분포하는 신들 가운데 악신으로 자리매김한 대표적 사례는 행역신과 액병신이 있다. 이 악신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진송양재의 대상이 된다.


*조선에서 조상신을 모신다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온 자연과 초자연에 대한 외경심의 한 표현이었다. 무라야마는 문명 진화론적 입장에서 일본은 문명, 조선은 야만 혹은 미개라는 양분적 사고 아래 조선 민간신앙을 원시적인 성격으로 파악했다. 당시 조선인들이 넓은 의미로서의 조상신인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다양하게 발달해온 하나의 신앙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원시적이며 미신이라는 관점을 가진 것은 분명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가 조선을 인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선총독부 촉탁이라는 신분이었다. 조선총독부의 경제 및 행정적 지원은 조선의 민속을 조사하기 위한 문헌 조사와 현지답사 등을 자유롭게 해줬다. 그러나 촉탁이란 신분은 동시에 조사 자료에서의 서술을 일정한 방향으로 제한시켰다.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이뤄진 조사와 보고는 애초 일제의 식민지 지배방침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키바 다카시나 아카마쓰 지조보다 상대적으로 총독부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무라야마의 경우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알고보면]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인식했나(中)

*촉탁은 관리복무 규율에 따라 속박당하기는 하였으나 본관보다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를 총독 이하 관리들 앞에서 발표했던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촉탁에 의한 조사 결과가 식민정책에 반영되는 확률도 낮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조선의 유사종교' 뒤 무라야마는 중추원 신앙심사위원회에 참가했다. 1936년 총독부는 위원회 작업을 기초로 '심전개발(1930년대 세계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일본이 자국의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고 때마침 만연하던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조선인을 천황에게 순종하는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전개한 정신 계몽운동)' 기본골격을 완성했다. 하지만 무라야마의 이러한 조사들이 과연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로 실제적 효과를 발휘했는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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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박전열 외 지음·발행처 한누리미디어 '그 생성원리와 문화산업적 기능 일본의 요괴 문화(2005)', 김용의 지음·발행처 전남대학교출판부 '일본설화의 민속세계(2013)', 모로 미야 지음·김경아 번역·발행처 일빛 '전설일본(2010)', 천인호 지음·발행처 세종출판사 '풍수사상의 이해(1999)', 노자키 미츠히코 지음·발행처 동도원 '한국의 풍수사들(2000)', 이석정 박채양 최주대 지음·발행처 브레인북스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번성한다(2007)', 손숙희 지음·발행처 국학자료원 '보통 사람이 쓴 무속이야기(1997)', 홍태한 지음·발행처 민속원 '우리 무당굿의 세계(2009)', 김희영 지음·발행처 민속원 '풍속 조사 자료를 통해 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 인식(2014)', 무라야마 지준 지음·최순애 요시무라 미카 번역·발행처 신아출판사 '조선인의 생로병사 1920-1930년대(2014)', 무라야마 지준 지음·최석영 번역·발행처 민속원 '한국근대민속인류학대계 2: 조선의 풍수(2008)', 이와타 시게노리 지음·조규헌 번역·발행처 소화 '일본 장례문화의 탄생(2009)', 장윤선 지음·발행처 이숲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2008)', 박태호 지음·발행처 서해문집 '장례의 역사(2006)', 유재철 지음·발행처 김영사 '대통령의 염장이(2022)', 김영민 지음·발행처 새문사 '우리 조상신앙 바로알기(2005)'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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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406:30
     ④ 이동식 마트는 적자…지원 조례는 전국 4곳 뿐
    ④ 이동식 마트는 적자…지원 조례는 전국 4곳 뿐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306:30
    "창고에 쟁여놔야 마음이 편해요"…목숨 건 장보기 해결하는 이동식 마트 ③
    "창고에 쟁여놔야 마음이 편해요"…목숨 건 장보기 해결하는 이동식 마트 ③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206:40
    "새벽배송은 사치, 배달이라도 됐으면"…젊은 사람 떠나자 냉장고가 '텅' 비었다 ②
    "새벽배송은 사치, 배달이라도 됐으면"…젊은 사람 떠나자 냉장고가 '텅' 비었다 ②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711:00
    ③'中 배제 新무역질서'…"동맹 경제력으로 中 견제"
    ③'中 배제 新무역질서'…"동맹 경제력으로 中 견제"

    미국 안보전략의 또 다른 축은 '경제안보'다. 중국을 배제하는 무역질서 재편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부담을 키울 거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무역관계 리밸런싱과 관세를 통한 재산업화를 내걸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들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여파가 한국에 전가되지 않도록 산업·기술 공급망 구조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공개한

  • 25.12.1706:10
    '상호주의' 기반 수출·통상 고도화…자본유출·환율상승 압박도
    '상호주의' 기반 수출·통상 고도화…자본유출·환율상승 압박도

    미국이 3년 만에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내놓으면서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계산서를 들이미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성향이 이번 NSS에도 고스란히 담기면서 수출 및 통상 셈법이 더욱 복잡해진 상황이다. 지정학 리스크 등 외부 제약 요인이 커질 경우 자본 유출과 환율 상승 등의 부작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토대로 기회를 엿

  • 25.12.1611:28
    "美·中 관계 거래주의 기반, 틈새서 실리 챙겨야"
    "美·中 관계 거래주의 기반, 틈새서 실리 챙겨야"

    최근 공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에 담긴 동북아 외교·안보 전략을 두고 이재명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한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빠지고 중국·러시아·일본에 대한 전통적 서술에 변화가 감지되면서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 외교 안보와 미·중 관계가 '거래주의'를

  • 25.12.1510:00
    中·러 "환영" vs 유럽 "내정 간섭"…각국 엇갈린 반응
    中·러 "환영" vs 유럽 "내정 간섭"…각국 엇갈린 반응

    역대 미국 행정부들과 정 반대 기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각국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인다. 전통적으로 견제 대상이었던 중국, 러시아는 예상 밖의 온건한 표현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오랜 동맹 유럽은 '문명의 소멸'이라는 미국의 경고에 "내정간섭"이라며 들끓고 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만 해도 NSS에서 중국을 '최대의 도전', 러시아를 '당장의 위협'이라고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도

  • 25.12.1510:00
    中 추격·러 위협 여전한데… 美 해석만 달라졌다
    中 추격·러 위협 여전한데… 美 해석만 달라졌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 지난 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NSS)이 공개됐다. 미국은 중·러와의 세계 패권 경쟁 대신 '힘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방침을 새 원칙으로 내세웠다. 33쪽에 달하는 이번 NSS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이후 3년 만에 나온 미국의 안보전략 지침서다. NSS는 미국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작성·공개하는 최상위 안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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