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361곳 전수조사
금융공공기관 중 산은·수은 등 30% 넘어
정부법무공단 50% 웃돌아 최대 격차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에서도 지난해 남녀 직원의 임금 격차가 많게는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직원이 100만원 벌 때 여성 직원은 50만원도 못 번 셈이다. 공공기관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성별 임금격차는 최근 5년간 평균 약 20%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보수액은 남성 7392만원, 여성 5985만원이었다. 임원을 제외한 정규직만 놓고 본 결과다.
18일 아시아경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전문기업 두이에스지(DoESG)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공공기관 정규직의 성별 임금격차 평균은 19.04%로 나타났다. 무기계약직과 상임임원은 각각 14.32%, 9.57%로 조사됐다.
이번 분석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362개 기관 중 361곳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2023년(3분기 기준)까지 5년치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재외동포청과 재외동포센터로 분리된 재외동포재단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과거 여성 적었다지만…신규채용서도 여전한 격차= 공공기관 정규직의 성별 임금격차는 2019년 20.53%에서 2023년 17.35%로 개선되고 있으나 그 폭이 크지 않아 5년 평균(19.04%)은 여전히 20%에 가까웠다.
공공기관 유형별로는 금융이 5년 평균 23.90%로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컸다. 다른 유형에 비해 임금격차 감소 폭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금융 공공기관의 지난해 성별 임금격차는 22.44%로 2022년 22.55%에서 0.1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문화예술외교법무(21.22%에서 19.39%), 농림수산환경(21.07%에서 19.10%) 등 다른 업종이 전년 대비 2~3%포인트씩 격차를 줄인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 유형에서 정규직 5년 평균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공공기관은 KDB산업은행으로 33.42%에 달했다. 한국수출입은행(31.91%)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산업은행은 2019년 35.81%에서 2020년 35.13%, 2021년 32.17%, 2022년 30.01%, 2023년 29.80%로 점차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70만원을 버는 수준에 머물렀다. 산업은행은 금융위원회 산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곳이다. 정규직 여성 직원은 2019년 1097명에서 2023년 1212명으로 늘었으나 5년간 여성 임원은 배출되지 않았다. 산업은행의 2023년도 통합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 여성은 임원, 1~5급, 일반직B(고졸 사원) 등으로 나뉘는 직급 구분에서 5급 및 일반직B 하위 직군에서 남성보다 수가 많았다. 4급 이상부터는 여성이 급격하게 줄었다. 상위 직급인 1급 정규직의 경우 남성은 87명인 데 반해 여성은 8명에 불과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과거 여성은 고졸 사원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재도 고졸 신입사원의 경우 여성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정규직 신규채용 85명 중 고졸 사원은 남녀 총 5명에 불과했고, 고졸 사원을 포함한 여성 인력은 총 37명으로 여전히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조폐공사는 정규직 평균 임금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역전 현상을 보였으나, 상위 직급 소수 여성이 평균을 높인 특수한 상황으로 분석됐다. 조폐공사의 5년 평균 성별 임금격차는 -2.27%였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여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폐공사도 여성 임원 수는 0명이었다. 조폐공사 ESG보고서를 살펴보면, 관리직(3급 이상) 남성은 109명, 여성은 9명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신규채용 인원에서도 남성은 52명, 여성은 11명으로 5배 가까이 됐다. 임직원 수도 남성이 985명으로 여성(364명)과 비교해 2.7배 많았다.
개별 공공기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곳은 정부법무공단이었다. 지난해 임금격차는 50.32%에 달했고, 5년 평균 역시 48.76%로 높았다. 정부법무공단은 이른바 ‘국가로펌’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으로 국가 상대 소송 등 각종 법률 사무를 지원한다. 알리오를 통한 공시에 따르면 변호사를 제외하고 3급부터 9급까지 포진된 일반직은 하위 직급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높았다. 3~6급은 남성이 8명일 때 여성 5명이었지만, 7~9급은 남성 12명, 여성 27명에 달했다.
공공기관 분류별로는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국가재정법에 따라 기금을 관리하거나 기금의 관리를 위탁받은 공공기관)의 성별 임금격차가 지난해 22.14%로 가장 컸다.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전체 361개 중 11곳으로, 이 가운데 금융기관은 한국자산관리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기술보증기금, 한국무역보험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6곳이다. 이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곳은 예금보험공사(30.36%)였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직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의 지난해 정규직 신규채용 28명 가운데 여성은 9명으로 32%에 불과했다.
한국마사회,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시장형 공기업을 제외한 준시장형 공기업의 성별 임금격차는 2022년 18.95%, 2023년 19.20%로 더 증가했다.
◆여성, 2년 3개월 덜 일한다…근속연수 차이 여전= 민간기업에 비해 육아휴직 등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공공기관도 여성이 남성보다 2년3개월(27.58개월) 더 먼저 퇴사했다. 5년치 평균을 집계해본 결과 정규직 남성은 137.13개월, 여성은 110.30개월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의 경우 남녀 근속연수 격차가 65.20개월(34.03%)로 가장 컸다. 시장형 공기업(자산규모 2조원 이상·총 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인 공기업)이 58.18개월(31.21%)로 뒤를 이었고,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 아닌 준정부기관) 45.06개월(28.36%), 준시장형 공기업 48.97개월(26.10%), 기타공공기관 20.09개월(17.48%) 순이었다.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앞서 분류별 성별 임금격차 상위권으로 언급된 한국자산관리공사,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등으로 금융기관이 절반 이상이다. 금융기관이 다수인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성별 임금격차도 크고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도 남성에 비해 짧았다. 5년치 평균으로 볼 때 금융 분야의 성별 근속연수 차이는 47.63개월(30.35%)로 근속연수 차이가 가장 작았던 고용보건복지 분야 12.59개월(11.99%)의 약 4배에 달했다.
한편 한전KPS는 정규직 임직원의 남녀 간 임금격차와 근속연수 격차 모두 크게 나타났다. 한전KPS는 발전과 설비 등 정비 분야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준시장형 공기업이자 에너지 유형에 속한다. 여성 임직원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한전KPS 관계자는 “1997년 이전에는 여성 입사자가 한 명도 없었다. 업종 자체의 한계 때문에 여성 지원 자체가 적다”면서 “2000년대부터는 여성 입사자들도 꾸준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블라인드 채용 등을 통해 여성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숙진 두이에스지 대표(전 여성가족부 차관)는 "이번 분석을 통해 임금과 근속연수 간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각종 제도의 직접적인 성차별적 영향보다는 간접적 영향 즉, 승진이나 승급에서 낮은 여성 비중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알리오 공시 자료에는 직급별 성별 데이터 등이 제시되지 않아 숫자를 근거로 명확하게 짚어볼 수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여성 취업은 1996년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목표율 10%)가 시행되면서부터 함께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려는 관행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현재 공공기관은 성별 관계없이 동일한 채용 절차를 거치고 같은 연봉을 책정(군 경력 인정 등 예외)하고 있지만,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이를 인정한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실무진급까지는 거의 차별 없이 승진되는 편이지만 정무직으로 임명된 사장의 평가가 많이 들어가는 차장급, 집행임원의 경우 남성의 비율이 높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민간 금융기관은 ESG를 선도하거나 여성 대표성 부문에서 앞서가기도 한다”며 “공공기관의 경우 여전히 상위 직급에 여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채용 시 사실상 하위직급으로의 성별 분리 채용 등 역시 지속하고 있는 곳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기계약직 개선 추세 약화…에너지 유형 가장 커= 정규직과 계약직의 중간적 고용 형태로 ‘중규직’이라고도 불리는 무기계약직은 정규직보다 임금과 근속연수 모두에서 성별 차이가 작았다.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이 무기한이어서 정년을 보장받지만, 임금이나 복지 수준 등 처우는 계약직 수준이거나 일반 정규직에 미치지 못한다.
무기계약직 성별 임금격차는 5년 평균 14.32%였다. 정규직 성별 임금격차 평균이 19.04%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2019년 15.12%에서 2020년 15.20%, 2022년 14.43%, 2022년 13.78%, 지난해 13.15% 등으로 개선 추세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
무기계약직 성별 임금격차는 5년 평균으로 볼 때 에너지(22.0%) 부문이 가장 컸다. 이어 산업진흥정보화(16.62%), 사회간접자본(SOC·16.11%), 금융과 기타가 15.02%로 동일했다. 시장형 공기업과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의 무기계약직은 2023년 기준 전년 대비 성별 임금격차가 각각 0.23%포인트, 0.2%포인트씩 상승했다. 단기 무기계약직 여성을 고용한 기관은 89개로 남성을 고용한 44개 기관보다 2배 많았다.
근속연수도 남성이 더 길었다. 지난 5년간 평균으로 남성은 51.38개월, 여성은 49.16개월이었다. 무기계약직은 남녀 모두 2019년에 비해 근속연수가 2배가량 증가했다. 2019년 무기계약직 남성 평균 근속연수는 39.64개월에서 2023년 64.78개월, 여성은 37.43개월에서 62.66개월이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