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문제는 국가 위기 상황"
"경기 남부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자"
"진영·팬덤정치로 대화·타협 실종 돼"
김진표 국회의장의 임기는 5월 29일이면 끝난다. 석 달 남았다. 하지만 지금도 분초를 다투며 일하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앞뒤로 일정이 빡빡했다. 참모들은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김 의장이 1월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인구 대책을 헌법에 넣자”고 제안했을 때 신선했지만, ‘국회의장이 왜?’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김 의장을 만났다. 그는 각종 사례와 수치를 들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길게 설명했다.
국회의장이 저출생 문제를 어젠다로 제시하고 심각성을 경고한 게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정부에서 30년, 국회에서 20년 등 대략 50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국회의장을 마지막으로 더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공직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았으면 나라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의 핵심 경쟁력인 인적 자원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위기가 시작됐다.
인구 절벽 문제가 국가 위기 상황인가?
그렇다. 그것도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다. 2006년 이후 17년간 저출생 예산으로 380조원을 투입했는데도 오히려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감소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가 우리나라에 대해 “14세기 유럽을 덮친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까지 평가하지 않았나. 인적자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을 잃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보는가.
5년 단임제로 인한 정책의 분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저출생 극복의 핵심인 보육·교육·주택 정책이 바뀌니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뒤죽박죽, 중구난방이다. 이러니 돈을 많이 써도 국민이 정부의 확실한 의지를 믿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저출생 문제를 심각한 국가 위기로 상정해 장기 어젠다로 관리해야 한다. 또 헌법에 저출생 대응에 대한 목표와 의무를 명시하고 일관된 정책 수단과 재원 투자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최소한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저출생 극복을 위한 개헌을 하자.
헌법에 무엇을 명시하자는 말인가.
최소 15년에서 20년의 시간을 갖고 보육·교육·주택 세 가지 정책의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취학 전 아동을 돌보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의 인건비 국고 지급,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AI 교육 시행, 결혼가정에 대한 공공 장기 임대주택 공급 등이다. 실제 핀란드, 벨기에, 독일도 가정에 대한 사회보장, 양육권자인 부모가 국가나 공동체의 보호와 부조를 받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특단의 정책이 연속해 이어진다는 확신을 국민께 줘야 한다.
예를 들면 ‘교육기관 선생님들의 인건비는 국가와 교육자치단체장, 교육감이 지급한다’ ‘AI 공교육, AI 인공지능 기법을 적용한 교육 정책을 중앙정부와 교육감은 시행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헌법에 넣는 것이다.
주택의 경우는 어떤가.
세계 어느 나라도 분양 주택을 그냥 나눠주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5년 단임제니까 불가능한 정책을 되는 것처럼 홍보하고…. 정부가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만들어줄 수는 있다. LH 같은 곳에서 직접 짓거나, 아니면 매입임대라는 게 있다. 민간 건설업자가 지은 걸 LH 공사가 매입해서 임대하는 방법이다.
원하면 결혼해서 아기를 낳은 사람, 결혼하고 출산할 사람, 결혼한 사람은 무조건 원하는 대로 20평, 30평, 40평에 갈 권리를 주는 것이다. 전제조건은 월 소득 20% 미만의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결혼 가정에 대해서 공공 장기 임대주택을 정부가 공급해야 한다’는 식의 헌법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저출생 문제와 관련해 최근 부쩍 기업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아주 중요하다. 저출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기업의 역할이다. 일본 이토추상사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아침형 유연근무제, 주 2회 전 사원 재택근무제, 8시 이후 근무 금지, 사내 어린이집 설치 등 적극적으로 근무 환경 개선에 힘썼다. 이를 통해 합계출산율이 2012년 0.6명에서 2021년 1.97명으로 올랐다. 노동생산성은 2010년 대비 2021년에 5.2배가 올랐고, 2023년엔‘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모가 일하면서도 충분히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유연한 휴직제도를 마련하고, 근무시간을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를 확대하는 등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또 기업들의 자발적인 출생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논의하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결혼과 출산, 양육 친화적인 직장 문화를 만드는데 국회도 필요한 입법과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아시아경제>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라는 연중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딸을 곁에서 바라보며 저도 안쓰럽고 속상했던 적이 많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여전히 여성이 더 많이 진다는 점에서 결혼·출산에 대한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결혼·출산이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되는 상황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재외 동포들의 복수 국적 허용, 이민청 설립 등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닌 것 같다.
현재 전 세계에 708만 명에 달하는 해외동포가 있다. 이들에 대한 복수국적 허용 기준을 완화한다면 경제혁신과 신성장동력을 제고할 수 있다. 특히 65세 이상의 고령 영주귀국자에게만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원칙은 G10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 유지하고 있다. 축소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주요 선진국처럼 복수국적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또 인력 유입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민정책·외국 인력정책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법무부가 이민정책을 담당하면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김 의장은 법안도 직접 발의했다. 지난 11월 ‘첨단연구산업단지 조성 및 육성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新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반도체, IT 등 첨단과학 기술 기업이 자리 잡은 경기 남부에 R&D를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선진국들은 수도권에 대규모 연구 클러스터를 조성해 세계 유수의 인재와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국가전략특구’, 영국 런던의 ‘Tech City’, 프랑스 파리의 ‘Le Grand Paris’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의 필요성을 정부가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반갑고 긍정적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곧 국회 심의가 시작될 예정으로,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정부 및 여야가 함께 건설적인 논의를 펼쳐나가길 기대한다.
법에 선거 1년 전에 정하기로 돼 있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등 국회가 법을 어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여야 모두 본인들이 이길 수 있는 제도만 고집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선거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 기한을 현행‘선거일 1년 전’에서 ‘6개월 전’으로 현실화하고, 획정위의 선거구획정안에 대해 국회에서 재획정 요구를 할 수 없도록 고쳐야 한다.
예산안 지각처리도 거의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데-.
우리 국회는 ‘정치심사’만 하고 있다. 현재 9월 1일에 정부 예산안이 제출되는데 9월에 대정부질문, 10월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 11월 한 달 동안 전체 예산안을 심의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기에 의원들은 9000여 개가 넘는 사업을 개별 심사하는 대신 ‘정치심사’를 택한다.
국회가 예산편성 단계부터 의견을 줄 수 있게 되면 정치적 명분 싸움이 줄어들고 지각 심사도 방지할 수 있다. 5월 31일까지 부처가 기재부에 사업별 예산을 제출하기 전에 각 상임위에 예산 요구사항을 보고하고 이에 대한 국회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제안한 상태이다. 편성단계별로 국회의 의견을 정부에 주고, 편성권을 가진 정부가 이를 참고해 예산을 작성하도록 했다.
21대 국회가 막바지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진영정치’‘ 팬덤정치’로 인해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국회를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한 선전장으로 삼으면서 정쟁이 극심해졌다. 여야는 상대방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하는데, 대립과 갈등이 너무 심해지다 보니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하고 배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지금 우리 정치는 끝까지 자기주장만 하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에게 “22대 국회에는 이런 국회의원 뽑아 주십시오”라는 관점에서 한마디 해 달라.
선거는 정치인에 대한 심판, 지지를 표출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민생 현안을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정치인이 더 많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국민께서 현명하게 투표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저도 국회의장으로서 국회의 봄, 대한민국의 봄을 만들기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