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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조기 교육이 아니라 늦은 시작이 인생 성공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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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스타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고흐·미르자하니·페더러 등
성공한 거장들 압도적 다수
어릴 때 여러 분야 전전하며 경험
특정 분야 최적화 좁아진 시야로
조기교육이 되레 덫으로 작용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조기 교육이 아니라 늦은 시작이 인생 성공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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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아내랑 자주 본다. 다채로운 자연 풍경, 독특한 문화, 역동적 삶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특히 오랜 시간 한 우물만 판 장인들 이야기는 흥미롭다. 음식, 옷, 가구, 인형, 시계, 악기, 솜사탕 등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예술처럼 다루어지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바야흐로 장인의 시대다. 평생 피와 땀을 불어넣으면서 자기 기예를 갈고 닦은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다. 장인이 삶의 모델이 되는 시대는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 준다. 돈이나 권력, 지위나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정신의 선진국에 진입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장인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견해서 그 길에 매진한 천재들 이야기를 좋아한다. 모차르트, 마이클 잭슨, 타이거 우즈 등은 부모가 어릴 때 재능을 알아차리고 오랜 시간 신중한 훈련을 거친 끝에 재능이 개화해 자기 분야 정상에 올랐다. 일찍 재능을 발견해 노력을 쌓으면 당연히 결과도 좋다. 이야기가 매끄럽고 깔끔해서 이해하기 참 쉽다. 우리가 쉽게 조기 교육 열풍에 휘말리는 이유다. 문제는 세상이 별로 깔끔하지 않다는 것이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열린책들)에서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조기 교육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거장들의 압도적 다수가 어릴 때 여러 분야를 전전하다 뒤늦게 자기 길을 알아챈 후 그 일에 뛰어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많은 운동을 섭렵했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음악보다 야구를 사랑했던 듀크 엘링턴, 소설가를 꿈꾸었으나 여성 최초로 필즈상을 탄 수학자 마리암 미르자하니, 숱한 직업을 전전하고 온갖 기법을 시험한 끝에 독자적 화풍을 찾아낸 반 고흐 등 사례는 무수하다. 그들이 자기 분야에 뛰어든 것은 거의 청년기에 이르러서였다.


어릴 때 특정 분야에 ‘몰빵’하는 건 좋지 않다. 탐색 범위를 넓혀 여러 가능성을 시험하고 많은 걸 경험한 이들이 인생 레이스에서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빚는다. 성공한 장인들 대다수는 영재의 길을 걷는 대신 ‘샘플링 기간’을 거친다. 타고난 재주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전문성과 상관없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더 어릴 때 자기 분야에 뛰어들었다면 그들이 더 큰 업적을 쌓았으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샘플링 기간은 낭비가 아니다. 엡스타인은 일찍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 관해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대다수 조기 교육 프로그램엔 ‘페이드 아웃(fade-out) 효과’가 작용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반복 훈련으로 금세 습득할 수 있는 걸 가르친다. 가령 구구단 외기나 한글 익히기 등은 순간적 천재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이들 대다수가 같은 걸 익히는 순간 선행 효과는 빠르게 약해지고, 심지어 완전히 사라진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세 살 때 문자를 익히는 아이보다 일고여덟 살 때 익히는 아이가 장기적으로 언어 능력이 높다. 충분히 발달한 두뇌와 함께 축적된 경험은 언어 잠재력을 꽃피우는 열쇠이다.


조기 교육은 삶의 서사가 아주 어릴 때 예측한 대로 흘러갈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 변화가 느리고 인생 경로에 큰 굴곡이 없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전문 기예를 익힌 사람이 유리하다. 일정한 패턴을 반복 숙달하면 대다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체스나 골프 같은 ‘친절한’ 영역은 조기 교육이 나쁘지 않다. 경쟁은 매우 치열하나 그 안에선 엄격한 규칙과 정해진 패턴이 조합되어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칼군무’가 특징인 K-팝도 어쩌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엡스타인에 따르면 세상은 사악하다(wicked). 악에 물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극히 까탈스럽다는 뜻이다. 모든 분야에서 수시로 규칙이 바뀌는 데다 이전엔 없던 문제들이 튀어나온다. 어릴 때 재능을 투자해 실력을 쌓은 후 평생 우위에 설 만한 분야는 거의 없다. 많은 영역에선 조기 교육이 덫이 된다. 엘리트 운동선수나 아이돌 연예인이 자주 그렇듯, 특정 분야에 최적화해 좁아진 시야 탓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까다로운 현실에 맞춰 창의적 해결책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오랜 세월 갈고닦은 좋은 도구라도, 그 하나만으로 이 까탈스러운 세상을 헤쳐가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은 체스판이나 골프장, 공연 무대나 운동장과 전혀 닮지 않았다. 도전 과제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고 엄정한 규칙도 별로 없다. 이런 사악한 세계에서는 때 이른 반복 숙달이 실패로 잘 이어진다. 반대로 어릴 때 많은 걸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낸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고 유추하고 종합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큰 성취를 얻을 가망성이 높다.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은 배우, 댄서, 마술사, 음악가, 조각가, 기계공, 소설가 등으로도 활동할 가능성이 그저 그런 과학자들보다 수십 배나 높았다.


어린 나이에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편협하다. 조기 교육을 받고 자기 분야에 몰빵한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 분야를 혁신한 원대한 창조자(Big Creator)가 되지 못했다. 반복 학습은 대개 창의성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더 다채로운 맥락에서 학습하고, 전에 접한 적 없는 상황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조기 교육이다.


여러 분야에서 방황하면서 큰 실수를 견뎌낸 아이들만이 거장이 된다. 인류가 직면한 까다로운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아이들이 많이 시도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길을 열어야 한다. 조기 교육보다 늦은 시작을 성공의 필수 요소로 여길 때 삶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가가 쏟아지는 장인의 시대가 비로소 우리 앞에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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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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